"촌스러워서"…청와대 로고 바뀐 사연

[비선실록(秘線實錄) 제21화-청와대 기밀 유출] 최순실 "의견 들어보고 싶으셨던 것" vs 박근혜 "무슨 전문성이 있어서…"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10.10 04:00


2013년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사저. 대통령 취임식 준비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모였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로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청와대 마크도 리뉴얼을 하려고”라며 “파란 기와 이거 하나만 딱 하지, 너무 똑같이 할라 그러니까 집이 촌스럽다”고 했다. 그러자 최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이번에 온 사람한테 한번 해보라 그래라” “그거로 해보세요, 옆을 날려가지고”라며 새로운 청와대 로고의 디자인을 지시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확보한 69분30초 분량의 녹취파일에 담긴 내용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취임 한달 뒤인 그해 3월 청와대 로고를 교체했다. 테두리가 사라진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취임 전부터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등 박근혜정부의 4대 국정기조도 최씨와의 회의를 통해 초안이 잡혔다.

취임 이후에도 최씨는 각종 인사와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등에 관여했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의견을 묻는다며 연설문과 외교 문서 등 청와대 기밀 자료들을 서류, 이메일, 외장하드 등의 형태로 유출했다. 이런 사실은 2016년 10월24일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국정농단 전반에 대한 수사로 이어졌다. 형량으로 보면 작지만 이 '공무상 비밀누설' 사건은 적폐청산과 문재인정부 출범의 단초가 됐다.
이명박정부 청와대 로고(왼쪽)와 박근혜정부 청와대 로고

◇ 박근혜 "최순실이 국민들에게 와닿는 표현을 쓰는 솜씨가 있어서"

다음은 2017년 3월21일 박 전 대통령이 특검팀 소속 검사와 주고 받은 문답이다.

검사(이하 검) : 정 전 비서관은 이미 여러 차례 연설문과 말씀자료 등 각종 자료 보고 과정에서 최씨의 의견을 듣고 참고해서 반영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이에 따랐다고 진술했다. (후략)
박 전 대통령(이하 박) : 최씨가 연설문과 관련 국민들에게 와닿는 표현을 쓰는 솜씨가 있어서 제가 정 전 비서관에게 조언을 들어보라고 했다.
검 : 대통령 당선·취임 후에도 최씨가 계속해 연설문, 말씀자료의 내용과 정책방향에 관여하고 주요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정씨에게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이렇게 지시했기 때문 아닌가?
박 : 그런 사실 없다. 다만 최씨가 사심 없이 저를 돕는다는 것을 정 전 비서관도 잘 알고 있었고, 둘 모두 저를 오랜 기간 도왔기 때문에 서로 가까운 사이라 두 사람 사이에서는 비밀 유출이라는 생각 없이 자료 등을 쉽게 공유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2013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보내 의견을 들은 후 이를 반영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부속비서관실의 외부 인터넷망의 보안을 일부러 해제하기까지 했다. 이런 행위들은 모두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

정 전 비서관이 최씨에게 이메일로 보낸 자료들에는 △중국 특사단 추천의원(2013년 1월) △34회 국무회의 말씀자료(2013년 8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2014년 3월 드레스덴)이 포함돼 있었다. 외부 반출이 불가능하고 사전에 외부 공개할 수 없는 자료들이었다.

최씨는 집과 사무실에도 청와대 문건을 다수 보관하고 있었다. 최씨의 집에서는 △초대 행정부 인사안 △국정원장·국무총리실장·금융위원장 인선발표안 △감사원장·검찰총장·공정위원장·금감원장·국세청장·경찰청장 등 인선안 △차관 인선안 △정부출범 첫 국정원 2차장 및 기조실장 인사자료 등 인사 자료들이 발견됐다. △시진핑 중국주석 통화자료 △아베 일본총리 통화자료 △케리 미 국무장관 접견자료 △한·미정상회담 및 순방일정추진(안) 등 외교 관련 파일과 '법원 조정 수용 여부 검토' '박지만 회장과의 친분 사칭 기업인에 대한 엄중경고' 등의 문건도 있었다.

최씨의 사무실에서는 △스포츠클럽 자원사업 전면개편 방안(2016년 2월~3월) △로잔 국제스포츠 협력거점 구축현황(2016년 4월) △해외순방일정표(대평원·북극성·선인장) △멕시코 순방관련 문화행사안(2016년 2월) 등의 자료가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뉴스1

특검팀에 따르면 최씨와 정 전 비서관는 2013년 3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총 1484차례 통화했고, 이 밖에 문자와 이메일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검 : 정 전 비서관은 '최씨의 말을 녹음해서 다시 확인하고, 대통령 말씀 하나하나를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녹음했다'고 진술하는데, 이를 알고 있었나.
박 : 전혀 몰랐다.
검 : 1998년부터 충실하게 보좌해온 정 전 비서관이 피의자의 뜻에 반해 몰래 최씨를 위해서 각종 문건을 보내주고 국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박 : 나쁜 뜻으로 문건을 전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도와주는 과정에서 가깝게 지낸 두 사람이 문건의 표현 등에 대한 조언을 주고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나름대로 보좌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박 대통령은 특검이 제시한 유출 문건 사본들을 본 뒤에도 “직접 확인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이런 문서들이 청와대에서 나갔다는 것은 놀랄 일”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자료나 문서에 대해서는 최순실로부터 의견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그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했다”고 강조했다.

최순실씨가 갖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존 캐리 전 미국 국무장관 접견 자료

◇ 최순실 "쓸 거 없으면 문예부흥으로 그냥 써"

최씨와 정 전 비서관은 사실상 상하관계였다. 박 전 대통령의 의원 시절 정 전 비서관을 의원 보좌진으로 선발한 것도 최순실·정윤회 부부였다. 정 전 비서관이 저장해뒀던 녹취파일의 상당부분은 최씨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최씨가 짧게 지시한 적도 있지만, 연설문을 수정하거나 새로 작성할 때 십여개의 문장을 쭉 이어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되지 않겠나” “노트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 직전인 2013년 2월17일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정 전 비서관이 모여 새 정부의 국정기조를 논의할 때 녹취파일은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보여준다.

최순실(이하 최) : 경제부흥은 괜찮아요. 국민행복도 괜찮아요.
박 : 문화라는 표현을 안 써도 그런 느낌이 오게 뭔가 그 복지 대신 국민행복을 쓰듯이 뭐 그런거 하나.
최 : 응, 한번 좀 찾아봐요. 문예부흥에 버금가는 얘기를 한번 찾아보세요.
박 : 창조경제도요.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온 게 아니에요.
최 : 쓸 거 없으면 문예부흥으로 그냥 써.

최씨가 “문예와 문화부흥이라고 하지 뭐”라며 “그러니까 그런 말을 잘 만들어내야 돼”라고 하자 정 전 비서관은 “말 어떻게든 만들어보겠다”라고 답했다.

이어진 대화를 보자.

박 : 취임식은 완전히 대한민국의 문화행사가 될 거라.
최 : 그렇죠.
박 : 한복까지 입고 지금. 그래갖고 복주머니를 그 추운 데에 나와 갖고 또 연다고. 여태까지 그런 문화행사가 없었잖아.
최 : 없었죠. 그런 거를 꼭 집어 넣고 그런 거를 기조로 해서 그렇게 했고. 그런 복주머니를 우리 전통적으로 만들어서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했고, 그런 문화가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어서 했다. 그렇게 딱 넣으면 그거는 문예 쪽으로 얘기가 되지.

취임식 때 박 전 대통령이 한복을 입고 나타나 나무에 매달린 300개의 오방색 복주머니를 여는 퍼포먼스는 사실상 최씨의 작품이었던 셈이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사진=뉴스1

◇ 최순실 "의견 들어보고 싶으셨던 것" vs 박근혜 "무슨 전문성이 있어서…"

청와대의 기밀 자료들을 받아본 데 대해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이) 중요한 결정에 앞서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제 의견을 들어보시고 싶으셨던 것 뿐”이라고 특검에 진술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최씨가 무슨 전문성이 있어서 의지를 하겠나”라고 반박했다. 드레스덴 연설문 등의 유출에 대해서도 그는 “외교전문가도 아닌 최씨에게 의견을 들어보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최씨는) 연설문이나 홍보자료 그리고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상황에 대한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수준에서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함에 있어서 판에 박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고 창의적으로 시대에 맞게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며 “최씨는 이런 생각을 잘 알고 있어서 이 생각에 잘 맞췄다”고 했다.

검사가 "최씨가 일반 국민의 시각으로 조언해주는 것이 도움이 됐다면 그런 시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거나 정식으로 자문단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까지 요란하게 의견을 들을 일이 아니었다"며 "외교전략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최씨에게 의견을 듣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 전 비서관이 최씨에게 기밀을 누설한 이유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이 최씨와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며 “그렇게 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결국 공무상 비밀누설의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법원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현재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직권남용 등 다른 혐의와 함께 이 사건을 심리 중이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 4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연루된 사건에 대한 첫번째 대법원 판결이었다. 법원은 "설사 피고인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번 범행은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제공해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확정 판결 전 구치소에서 대부분의 형기를 채워 지난 5월 만기 출소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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