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어 나간다"…'범죄' 아닌 '과로'와 싸우는 검사들

[Law&Life-'과로 검사' 잔혹사 ①] 민사 사건도 "무조건 고소·고발"…형사조정제 활성화해야

박보희 기자, 안채원 인턴기자 2018.10.11 05:01

#지난달 7일 새벽 2시,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 소속 30대 중반의 현직 검사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날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한 뒤 집에 가던 길이었던 이모 검사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2010년 12월, 결혼을 앞두고 있던 30대 초반의 정모 검사가 세상을 떠났다. 강력부에 배치된 지 10개월 만이었다. 유가족들은 정모 검사가 젊은 나이에 돌연사 한 것은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등으로 누적된 과로와 업무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검사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과로'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정 검사의 죽음 이후 달라진 건 없다. 지금도 검사들은 '범죄'가 아닌 '과로'를 상대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검사의 '업무과중'과 그에 따른 '과로'는 사법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방기할 수 없는 문제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검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건이 너무 많아 힘들면 아무래도 주요 사건에 집중하고, 일반 사건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달에 사건 300건 처리하는 검사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사건은 총 181만7860건. 이 가운데 고소·고발 사건만 46만7835건에 달한다. 이를 모두 2000명 남짓한 검사들이 오롯이 책임졌다. 형사부의 경우 검사 한 명이 한달 평균 적게는 100~150건, 많게는 300건까지 사건을 처리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검사들에게 야근은 일상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형사부 검사들은 거의 매일 밤 10~11시까지 야근을 하고, 밤 12시를 넘기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며 "승진 욕심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사건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력에 비해 사건이 너무 많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인력 증원이다. 그러나 일이 많다고 검사 정원을 마음대로 늘릴 수는 없다. 우선 검사의 수는 검사정원법으로 정하고 있어서 법을 바꿔야 한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데,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어서 말처럼 쉽지 않다.

검사들도 모두 '검사 증원'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한 검사는 "인원이 늘어도 결국 사건 수도 늘기 때문에 결국 상황은 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증원이 결국 수사기관의 비대화로 이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김웅 대검 미래기획 형사정책단장은 "검찰이 관여하는 형사 사건이 줄어야 수사기관의 권력화도 막을 수 있다"며 "지금은 고소사건 때문에 검찰이 개인의 영역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사 사건도 "무조건 고소·고발"…형사조정제 활성화해야

검사들은 형사 사건이 줄지 않는 이유로 '민사 사건의 형사화' 문제를 지적했다. 민사로 해결해야 할 사건들까지 고소·고발을 통해 형사 사건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 단장은 "외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는 절도인데, 국내의 경우 사기 사건이 가장 많다"며 "이는 민사 사건을 형사화해 해결하려는 국내의 특수한 상황 탓"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대법원이 발표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로 기소된 사건은 4만1025건으로 도로교통법 위반(2만9614건), 상해·폭행(2만6004건), 절도·강도(1만3636건) 사건을 넘어섰다.

실제로 변호사들은 민사 사건에서 각종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형사 고발을 일종의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건 당사자가 각종 증거 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을 통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도 있다"며 "사실상 민사 사건이지만 형사 고발하는 것을 전략으로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검 소속 한 검사 역시 "실제로 억울한 피해자도 많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고소를 하면 변호사 대신 검사가 다 해준다는 기대가 형사 사건을 늘리는 측면도 있고, 이 경우 정말 억울한 피해자에게 집중될 수사력이 분산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정, 중재 등 대체적 분쟁 방안의 확대'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대표적인 것이 '형사조정제도'다. 형사조정제도는 민사 분쟁 성격의 형사사건에 대해 민간 위원들이 참여해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화해에 이를 수 있도록 조정하는 제도다. 형사조정의 의뢰율과 조정 성립률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의뢰율은 2011년 1%대에서 2016년 상반기엔 약 6%로 뛰었고, 조정 성립률은 2013년 52%에서 2016년 상반기 60%로 올랐다.

김 단장은 "해외에서도 궁극적으로 대체적 분쟁 해결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고 있다"며 "민사적으로 양측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검사는 "조정이 불가능한 사건들도 있지만 일부 사건에선 조정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조정 등 중간지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형사 사건 수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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