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과거사위 "박종철 사건, 외압 굴복해 졸속·늑장·부실수사 방조"

"초기 '물고문 질식사' 규명 높은 평가 불구, 치안본부 조작·도피 방조" 지적

황국상 기자 2018.10.11 15:01
박종철 열사의 31주기인 지난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박종철 열사의 고교 동찰이 영정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졸속·늑장·부실수사로 점철되도록 의도적으로 방조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11일 "검찰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 축소·조작 기회를 주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경찰관 5명으로부터 수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질식사한 데 대해 치안본부가 사망원인을 조작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고문치사의 범인을 2명으로 축소·조작한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치안본부가 처음부터 사건 은폐를 시도했고 검찰이 이를 인지했음에도 직접 수사를 하지 않은 점 △치안본부가 고문 경찰관을 2명으로 축소·조작했음에도 검찰이 사건을 송치받은 후 4일만에 수사를 종결해 서둘러 기소하는 등 졸속으로 수사한 점 △1987년 2월 고문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것을 검찰이 알았음에도 수사에 즉시 착수하지 않고 있다가 그 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성명 발표 이후에야 수사에 착수한 점 등 의혹이 제기됐다.

또 △치안본부 간부가 최초 고문 경찰관 2명에게 추가 공범 은폐의 대가로 대공수사비를 지급했는데 검찰이 이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은 점 △치안본부장이 사건 은폐와 축소·조작에 관여했다는 점을 알았음에도 검찰이 치안본부장에 대한 수사를 지연했다는 점 등도 해결되지 않은 의혹으로 지목됐다.

이에 위원회는 "검찰은 치안본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신뢰할 수 없어 직접 수사할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결정에 굴복해 치안본부에 수사를 일임했다"며 "사실상 사건 축소·은폐 조작 기회를 제공한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직접수사 방침을 변경해 경찰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조기에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실패해 결과적으로 2차·3차 늑장 수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 검찰의 졸속 수사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은 처음부터 사건을 신속하고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 매우 짧은 수사기간을 설정했다"며 "고문치사 사건의 중대성과 특수성,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할 때 법정 구속기간을 충분히 활용해 충실히 수사를 진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충분하고 미흡한 상태에서 수사를 신속히 종결하고 쫓기듯 기소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검찰이 당시 추가공범 수사를 지연한 데 대해 "장기간의 수사착수 지연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한 청와대, 대통령의 영향 및 지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검찰이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물론이고 치안본부가 은폐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적극 협조한 결과가 돼, 치안본부의 범인은닉을 적극 방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어 대공수사비 유용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치안본부 간부였던) 대공5차장 등의 행위는 범인도피죄에 수반된 행위이기도 하지만 별도로 업무상 횡령죄, 국고손실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그러나 검찰은 이같은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적극 수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치안본부장에 대한 수사를 지연한 데 대해서도 "검찰이 치안본부의 진상은폐를 묵인하고 진상파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부실수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사건 발생 초기 검찰이 치안본부의 조작·은폐 시도를 막고 부검을 지휘해 사인이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임을 밝혀낸 점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라며 "검찰총장이 유족을 찾아가 검찰 과오에 대해 사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또 △박종철 사건을 포함한 검찰의 잘못된 수사 사례와 모범적 수사 사례를 대비해 그 원인과 문제점, 대응방안 등을 현직 검사·수사관 또는 신규 임용자 등에 대한 교육과정에 반영할 것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인하고 검사 개개인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제도·대책을 수립할 것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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