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잃어버린 사람들,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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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2018.11.09 05:20

강씨는 1993년 서울 남부경찰서를 통해 시립부녀보호소에 입소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 미군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고 했으나 수시로 달라지는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두 달 만에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3년 만에 퇴원한 그는 1996년 정신요양시설로 옮겨졌다. 중간에 3년간 또 다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것을 제외하면 20년이 넘도록 같은 정신요양시설에 살고 있다. 

20년 만에 찾은 이름, 김씨에서 강씨로

사실 강씨는 20년간 김씨였다. 신원미상자로 ‘처리’되어 구청으로부터 행려환자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55년생 김씨로 살던 그가 강씨라는 이름을 찾은 것은 2012년. 경찰서의 지문채취를 통해 20년 만에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48년생 강씨였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찾은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는 구청에서 통하지 않았다. 구청에 48년생 강씨는 없었다. 같은 이름이 있긴 하지만 나이가 10년 이상 차이나 동일인으로 추정하기 어렵다는 답변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시에는 강씨에 대한 공적기록부를 찾기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기록이 파편적이고 복잡하게 얽혀 법률구조공단에서도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들어 강씨에게 몸이 아픈 날이 부쩍 늘어났다. 노령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정신과 약을 먹어서이기도 했다. 행려환자로 정신요양시설에서의 의료급여는 받고 있는 그였지만 노인장기요양서비스나 국민기초생활수급을 받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공적기록부가 없는 한 신청조차 해보지 못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경찰 기록과 구청 기록이 달라 복지신청 못해

보다 못한 시설의 사회복지사가 도움을 청해왔다. 가장 빠른 방법은 경찰서에서 찾은 48년생 강씨로 새로이 성(姓)과 본(本)을 만들고, 그에 기한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한 뒤 복지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사실조회 확인을 하고, 사회복자사를 인우보증인으로 세워 간신히 성본창설허가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려하자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려면 현재 가족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구청에서 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무상 가족관계 부존재증명 발급신청을 하면, 기재된 인적사항을 행정전산망에 올려 약 보름간 전국적으로 가족관계 유무 검토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같은 이름에 주민등록번호 중 숫자 하나만 다른 사람이 발견되었으므로, 강씨와 그 사람이 동일인으로 추정되어 부존재 증명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무슨 까닭에선지 강씨의 가족들이 강씨의 등록지를 여러 번 바꾸었다. 첫 번째 등록기준지에서 수정사항을 결정하면 2차, 3차 등록기준지에도 전달해 모두 수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정보를 줄 수도, 직접 확인해줄 수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성본창설 허가받았지만 가족관계등록부는 여전히 불가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일도 아니다. 과거에는 여러 가지 공적기록부를 모두 수기로 작성하였고, 2000년대부터는 수기로 된 공적기록부를 대대적으로 DB(데이터베이스) 전산화하여 관리하였다. 그 과정에서 오기나 누락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강씨의 경우도 주민등록부와 제적부에 주민등록번호가 잘못 입력되었고, 등록기준지가 달라지면서 경찰서와 구청도 각기 다른 정보를 보관하게 된 것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성본창설 허가결정을 포기해야 했다. 마지막 등록기준지의 담당 공무원을 설득하여, 행정기관이 주민등록부와 가족관계등록부를 직권으로 정정하기로 하였다. 「주민등록법」 제13조에 의하면 주민등록 관리기관이 부실하게 신고된 것을 발견한 때에는 직권으로 주민등록을 정정할 수 있고,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20조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 기재에 착오나 누락이 있는 경우 또는 등록부에 기록된 행위가 무효임이 명백한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하였다.

행정기관의 직권정정, 쉽지 않은 문턱

어쨌든 이제 강씨는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가족도 찾고, 복지서비스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강씨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미군과 결혼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실제로 외국인과 혼인한 기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이러한 사건이 업무편람에 상세히 규정되어 있지도 않고, 따라서 담당 공무원의 재량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건은 법원의 판결문과 여타 증거자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엄연한 국가의 과실에 의해 국민이 피해를 본 사안임에도 직권정정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 모든 입증의 몫은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개인이 입게 되는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은 돕지 않는다고 하지만 강씨가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라를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김도희 변호사는 서울시민의 기초생활안전망, 홈리스와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법률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스스로 권리주장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확성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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