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성별 알려주는 게 불법이라고?"

[우리 삶을 바꾼 변호사]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태아 성감별 전면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끌어내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11.16 05:02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사진=법무법인 화우


2004년 12월 정모 변호사는 부인의 출산을 앞두고 산부인과에 태아의 성별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의료인은 태아의 성별을 남에게 알려줘선 안 된다는 의료법 조항 때문이었다. 정 변호사는 이 ‘태아 성감별 전면적 금지’ 조항이 과도하게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듬해 아들을 출산했지만, 헌법소원 절차는 계속 이어졌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2008년 헌법재판소는 로펌 사무실로 공개변론을 한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유학 중이어서 직접 변론에 나설 수 없었던 정 변호사는 동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당시 그의 사연을 듣고 무료 변론에 나선 이가 바로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57·사법연수원 16기)다. 박 변호사의 변론 끝에 2008년 7월 헌재는 ‘태아 성감별 전면적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2004헌마1010)을 내렸다. 이 조항이 만들어진 후 21년 만이었다. 2009년 12월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라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이 조항은 임신 32주 이후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수 있도록 바뀌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을 경험했다. 1980년대엔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남성 대 여성 출생 성비가 110 대 100을 넘었다. 1990년 말띠해에는 ‘말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미신 때문인지 성비가 116.5 대 100에 달하기도 했다.


이런 성비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와 국회는 1987년 태아 성감별을 전면 금지했다. 의료법에 ‘의료인이 태아 성감별을 목적으로 임부를 진찰하거나 진찰 중 알게 된 성별을 본인이나 가족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태아가 선호하는 성별이 아닐 경우 낙태를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법이 생긴 뒤에도 암암리에 태아 성감별은 이뤄졌다.


당시 공개변론에서 박 변호사는 낙태 등의 위험이 크게 낮은 기간까지도 전면적으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지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몽 설화‘까지 언급한 그의 변론은 법조계에서 회자가 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삼국사기에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여 땅을 떠나면서 임신한 아내 예씨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성별에 관해 궁금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비부모들은 뱃속에 있는 태아의 성별을 알고 싶어 한다”며 태아 성감별 전면적 금지는 위헌임을 강조했다.


헌법소원에선 정 변호사가 2005년 이미 아들을 낳았다는 게 쟁점이 됐다. 더 이상 당사자에게 보호할 권익이 없는 셈이다. 대개 이런 경우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보고 본안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채 재판 절차를 끝내는 ‘각하’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헌재는 ‘기본권 침해 행위가 반복될 위험이 있고 헌법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본안 판단으로 넘어갔다.


결국 헌재는 고심 끝에 박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된다”면서도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태아에 대한 성별 정보를 태아의 부모에게 알려 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의료인과 태아 부모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변호사는 “헌재의 공개변론이 2008년 4월이었는데 같은 해 6월 대법원에서 다른 사건의 공개변론이 열려 거기에도 참여했다”며 “변호사들이 평생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공개변론을 한 해에 두 번이나 한 데다 결과도 모두 좋게 나와 과분한 행운을 누렸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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