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안 때리고 막기만 했는데 가해자라구요?"

[엄마 변호사의 세상사는 法]학교폭력상담소 ➁ - 가해학생 조치에 대한 불복

박윤정 (변호사) 기자 2018.11.15 05:00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경화(가명)씨는 학교로부터 최근 중학생인 아들 지호(14세, 가명)의 학교폭력행위로 신고가 접수됐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경화씨가 아이로부터 전해들은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속이 좋지 않아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아 잠을 청하던 지호는 역시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있던 같은 반 친구 태민이가 다른 친구의 가방을 뒤지는 것을 봤습니다. 지호는 태민이에게 남의 가방은 왜 뒤지냐고 물었고 태민이는 다짜고짜 지호에게 달려와 주먹질을 했습니다. 지호는 무척 당황했지만 같이 때리지는 않고 날아오는 주먹을 막기 위해 태민이의 팔을 세게 쥐는 등 방어만 했습니다. 둘의 몸싸움은 다른 친구들이 교실에 돌아오면서 일단락 됐습니다. 지호는 얻어맞은 얼굴이 욱신거렸으나 부모가 걱정할 것을 우려해 그냥 참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태민이의 부모가 지호를 폭행 가해자로 지목해 학교폭력 신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경화씨는 교사로부터 신고가 접수됐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지호가 자신은 맞기만 했을 뿐 때리지 않아서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 말을 믿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날 지호와 함께 참석한 경화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피해학생’으로 임하게 된 줄 알았던 지호가 ‘피해학생이자 가해학생’으로 분류돼 의견 진술을 하라는 거였습니다. 더구나 경화씨와 지호는 태민이가 지호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라며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를 제출하고 ‘태민이의 폭행에 맞서 자신도 가만있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작성된 지호 진술서 사본을 개인정보만 가린 채 태민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분하고 당황한 나머지 의견 진술 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자치위원회는 그대로 종결됐습니다. 경화씨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호에게 대체 왜 저런 진술서를 쓴 것이냐고 다그쳤는데 지호는 ‘당시 설마 더 나쁜 행동을 한 태민이가 일을 크게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해 조용히 넘어가고 싶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쓰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화씨는 곧 학교로부터 처분 결과를 통지받았는데, 태민이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제1호(서면사과), 제2호(피해학생 접촉 금지), 제3호(교내봉사), 제7호(학급교체) 처분이 내려졌고 지호에게는 동항 제1호(서면사과) 처분이 내려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호는 자신은 무차별 폭행을 방어한 것 밖에 없는데 가해학생이 돼 서면사과 처분을 받은 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등교도 거부한 채 방에 틀어박혀 있고, 경화씨는 이 모든 일이 너무나 당황스럽고 아이를 위해 이제라도 뭔가 할 수 없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지호는 맞기만 했는데 가해학생이 될 수 있는 것인가요?
▶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능합니다. 지호의 진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호 자신이 태민이의 폭행에 맞서 자신도 가만있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했고 상대 학생이 상해진단서를 제출한 이상 학교나 자치위원회 입장에서는 일응 쌍방폭행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지호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받으려면 지호 스스로 작성한 진술서 내용을 뒤집을 만한 목격자 진술 등을 확보하거나 학교 측에 목격자 조사 등을 요청해 자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부여된 가해학생 진술 기회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진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차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임해 이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쌍방폭행이 되면 더 많이 맞고 다친 사람이 피해학생이 되고 상대방이 가해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모두 피해학생이자 가해학생이 되는 것이고 상해의 정도는 자치위원회가 조치를 결정할 때 고려될 수 있는 사항일 뿐입니다.   

학교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학교는 가해학생 및 피해학생 보호자에게 통보를 하도록 돼 있으므로(학교폭력예방법 제20조 제2항), 보호자는 통보를 받으면 아이에게 경위를 묻고 하지 않은 일은 안 했다고 분명히 진술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싸움을 목격한 학생이 있다면 진술을 확보해둘 필요도 있는데, 이때는 반드시 목격한 학생의 보호자로부터 허락을 구하고 강요나 압박이 없는 상태에서 본 내용을 사실대로 기술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또한 자치위원회 개최 전이라도 보호자가 자기 아이의 진술서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제되지 않을 것이므로 혹 아이가 조사 과정에서 진술서를 이미 작성했다면 이를 요청해 미리 읽어보고 심의 절차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도한 흥분도 해가 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진실이 밝혀지겠거니 하는 마음에 손을 놓고 있으면 대응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지호가 작성한 진술서가 자치위원회 회의 개최 전에 상대방 부모에게 넘어간 것을 문제 삼을 수 있나요?
▶ 학생이 작성한 진술서는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한 자료입니다. 공립 중학교는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 해당하며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대상이 되기는 합니다(동법 제9조 제1항 본문). 그러나 정보공개법은 일부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정보를 동조 각호에서 나열하고 있는데 학교폭력 사안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학생의 진술서 등은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제5호)’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2012년 교육부 학교폭력 사안처리 매뉴얼 참조). 그러므로 학교로서는 진술서 공개 요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거부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하고 공개하기 전에 적어도 지호나 보호자인 경화씨에게 알렸어야 했습니다(동법 제11조 제3항). 그러나 법상 학교가 해당 진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지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지호나 경화씨가 공개를 거부한다고 해서 비공개대상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대법원 2008두8680 판결), 경화씨는 공개 과정에서의 학교 측의 절차위반을 문제 삼을 수는 있겠으나 사실 실익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 지호가 받은 처분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나요
▶ 가능하지 않습니다. 피해학생과 달리 가해학생은 전학과 퇴학 조치에 한해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의 2 제2항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므로 서면사과 처분을 받은 지호로서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재심청구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교욱청의 행정심판위원회에 학교폭력 처분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행정처분에 대한 일반적인 불복 절차를 따르는 것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참고로 학교폭력예방법 상 가해학생 조치 중 제17조 제1항 제1호(서면사과), 제2호(피해학생 접촉 금지), 제3호(교내봉사), 제7호(학급교체)의 경우에는 졸업과 동시에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도록 하고 있으므로[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교육부훈령)], 만약 불복절차 진행 중에 지호가 졸업하게 된다면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봐서 각하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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