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 일선 법원 '사건 배당'까지 조작"

통진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항소심…법원행정처가 '찍은' 재판부·주심판사에 사건 배당

백인성 (변호사) 기자, 김태은 기자 2018.12.04 15:20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6.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통합진보당 관련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는 데 개입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검찰은 법원이 해당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기 위해 전산시스템을 조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만약 사실로 확인된다면 사법부가 그동안 강조해온 '사건 무작위 배당' 원칙이 깨진 셈이다. 

4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박병대 전 대법관(61·사법연수원 12기)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면서 이같은 정황을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70·2기) 역시 공범으로 적시됐다.

2014년 김미희·김재연 등 옛 통진당 의원들은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법원에 국회의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반정우)는 '헌재의 결정을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 판결은 헌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했던 당시 행정처의 기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 판결을 보고받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느냐, 행정처의 입장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된 게 맞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행정처는 2심 배당을 예의 주시하다 심상철 당시 서울고등법원장(61·12기)에게 해당 사건 2심을 서울고법 행정6부에 배당해줄 것을 요구했다. 사건은 행정처의 요구대로 서울고법 행정6부에 배당돼 김모 판사가 재판을 맡았다. 그러나 해당 판사는 인사철이 가까워지자 판결을 선고하지 않았고, 이동원 현 대법관이 후임 재판장이 된 뒤 판결이 선고됐다. '정당이 해산되면 소속 의원들도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취지로, 행정처의 의중과 다르지 않았다.

통상 법원은 사건을 접수하면 전산시스템으로 재판부를 임의 배당한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서울고법이 행정처의 요구대로 특정 재판부에 사건을 배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적인 조작으로 항소심 재판부 전자 배당을 임의로 조작했다는 뜻이다. 검찰은 최근 서울고법 고위급 인사를 조사해 이같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행정처가 고법 고위 간부에게 '사건이 접수되면 특정 재판부에 특정 판사를 주심으로 배당되도록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고, 해당 간부는 고법 직원에게 지시를 전달했다"면서 "원래는 사건 접수 이전엔 사건번호가 만들어지지 않는데, 당시엔 특이하게도 사건 접수 전에 이미 사건번호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같은 재판부 배당 조작이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판결을 선고한 후임 재판장이었던 이 대법관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편 박 전 대법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같은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