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신'이 아닌데…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아요"

[서초동살롱]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12.10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판사도 신이 아닌데, 가끔 재판 때 보면 저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서초동에서 20년 넘게 소송을 한 베테랑 변호사의 말입니다. 일부 판사들이 재판에 임할 때 마치 신처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겁니다. 겸허한 자세로 기록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진술을 경청한 뒤 판단해도 모자랄 텐데요.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소송의 경우 이런 일이 잦다고 합니다.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판사들이 처음부터 사건의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선입견을 갖고 사건을 대한다는 거죠.


소송에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꼭 필요합니다. 민사소송의 승리는 사실관계를 쌓아 올려 누가 더 자신의 결론에 맞게 증거를 가져오느냐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손해배상 등 민사 사건에서 상대방이 갖고 있는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거나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손해배상 전 일부러 형사 소송을 해서 간접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전략을 쓰기도 합니다.


한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자료가 이쪽엔 없지만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출해달라고 하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서제출명령’이란 게 있는데 이게 잘 활용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재판부가 문서제출명령의 이행을 제대로 강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판사 입장에선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거죠. 그런 증거 안 봐도 나는 이미 다 안다, 판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민사소송법에는 소송의 상대방이 문서제출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한 쪽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상대방이 제3자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기거나 불성실하게 서류를 제출하더라도 별 탈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컨대 회사를 상대로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낸 근로자가 추가 근로를 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패소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경력 5년차의 한 변호사는 “오히려 변호사가 돼 소송을 하면 할수록 판사를 못 믿게 되는 것 같다”면서 “점점 판사들도 어떤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공무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습니다. 판사들이 재판에서 약자의 편에 서거나 제대로 된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승진을 위한 일처리에 급급해 보일 때가 있다는 거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지난달 27일엔 70대 남성이 현직 대법원장이 탄 차량에 화염병을 던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법원 판결에 승복하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사법농단 사태도 사법신뢰 추락과 무관치 않죠. 그런데 의혹의 핵심 인물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선 지난 7일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이들의 하급자로서 혐의가 겹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미 구속됐는데 말이죠. 국민들 입장에선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궁극적으로 법원이 신뢰를 회복할 길은 재판을 잘 하는 것 뿐입니다. 이를 위해선 법원이 당사자들에게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중요한 증거가 있다면 법정에 제출하도록 당사자들을 잘 이끄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법원의 판결을 믿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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