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상처받고 성과도 못 낼 거라며 말렸죠"

[인터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합의' 이끈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전 대법관)

황국상 기자 2018.12.13 11:27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왼쪽부터), 김지형 조정위원회 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다들 힘들고 상처받고 성과도 내지 못할 거라면서 말렸죠." 

2014년 11월,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60·사법연수원 11기·전 대법관)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등에서 근무하다 숨지거나 장애를 얻은 이들과 회사 사이의 조정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주변의 반응이었다. 

김 대표는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인터뷰에서 "성과를 못 내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문제에서 제3의 조정자나 중재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락했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가 십자자를 짊어진 지 4년.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황상기 대표가 손을 맞잡았다.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에서다. 

이로써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근무하던 고(故) 황유미씨가 숨진 지 11년만에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묵은 갈등이 종식됐다. 당시 김기남 대표와 황 대표의 사이에서 함께 협약문을 들고 웃음 지은 이가 김 대표다.

국내에서 이 정도로 주목받은 사건이 법원의 판결이나 강제 조정이 아닌 '민간 중재' 방식으로 원만하게 타결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법규가 모호한 산업재해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당초 '조정'을 목표로 출범했던 위원회가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도 특징이다. 조정이나 중재 모두 당사자 및 제3자가 머리를 맞대고 승패가 아닌 제3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선 같다. 그러나 다만 중재는 3자 역할을 맡은 중재판정부가 합의안을 결정하고 이에 따르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 조정과 다르다.

오랜 기간 반목해온 양측이 김 대표 등 3인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에 조건 없이 승복하기로 합의한 게 지난 7월이다. 김 대표 등 조정위원회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김 대표는 "삼성전자와 반올림도 3자가 참여하는 조정·중재를 통하지 않고 당사자끼리만 일방적인 주장을 주고받다가 나중에는 불신·상처 등 비(非) 본질적 요소 때문에 갈등 해소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빠졌다"며 "이런 갈등은 민간 당사자 간 합의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사법 부문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갈등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분쟁해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일부 이번 합의의 성과를 폄훼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피해자들에만 국한된 합의가 다른 피해자들의 구제를 더 어렵게 했다는 주장 등이다. 김 대표는 "이번 중재 합의의 효과가 삼성전자 이외의 삼성 계열사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사내 협력업체 이외에 사외 협력업체 소속 피해자까지 구제하지 못한다는 점 등 한계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공사례가 일으키는 '물결 효과'는 분명히 있다"며 "이번에 구제받지 못한 이들이 필요로 한다면 도움을 드릴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번 삼성전자·반올림 협상 과정을 정리한 백서를 내년 상반기 중 발간할 계획이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을 맡아 '건설 재개'라는 결론을 이끈 뒤 백서를 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원자력발전소 갈등 뿐 아니라 노동 분야의 갈등도 중재로 해결한, 아주 드물지만 소중한 경험을 했죠. 과거 실패에 대한 기록에 주로 쓰이던 백서를 이제 성공사례로 정리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삼성전자·반올림 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소임을 마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전 대법관) /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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