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2년…'희대의 스캔들', 그 결말은?

[비선실록(秘線實錄) 제25화-최종회] '묵시적 부정청탁' 인정 여부 등 대법원 판결 3대 포인트

김종훈 기자 2019.01.04 04: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2017년 5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법무부 호송차에서 내렸다.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으로 전락한 박 전 대통령의 첫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두달 전 대통령 직에서 파면당해 청와대에서 쫓겨나고 구치소에 수감됐지만 예전의 그 올림머리는 그대로였다. 
그로부터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박 전 대통령은 1·2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 박 전 대통령의 '복심'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다른 피고인들도 마찬가지다. 2016년 10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지 2년3개월이 흘렀지만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국정농단 재판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기자의 눈에 비친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굴종'이었다. 청와대 참모들 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과 국민연금까지. 모두 따라선 안 될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고, 그 때문에 일부는 법정에 서고 구치소에 갇혀야 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박근혜정부 국정농단과 같은 비극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청와대 압박에 휘둘린 공정위

박근혜정부 시절 부당한 지시에 굴종한 대표적인 곳이 바로 공정위다. CJ가 제작한 '변호인' 등의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자 청와대는 공정위에 CJ를 검찰에 고발하라고 압박했다. 공정위 간부들은 부당한 지시임을 알면서도 청와대의 뜻대로 CJ가 계열사 영화들을 부당지원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정위는 청와대 지시를 받고 삼성에 유리하도록 법률 해석을 뒤집어 삼성의 순환출자 지분 해소 부담을 줄여줬다.

순환출자란 A사가 B사에 출자하고, B사가 C사에 출자하고, C사가 다시 A사에 출자해 계열사끼리 자본을 부풀리는 투자 방식을 뜻한다. A사만 지배하면 나머지 B사, C사까지 지배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법에선 새 순환출자고리 형성과 기존 순환출자고리 강화를 금지하고 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고리는 10개에서 7개로 줄었다. 그러나 다른 2가지 순환출자 고리에서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옛 물산→전자→전기→모직'(삼성 생략)이다. 이 부분은 합병 후 '통합 물산→전자→전기→통합 물산'으로 바뀌었다. 2015년 10월까지만 해도 공정위는 새 고리가 발생한 만큼 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려면 삼성전기가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처분해야 했다.

두번째 문제가 된 고리는 '옛 물산→전자→SDI→옛 물산'이다. 합병 후엔 '통합 물산→전자→SDI→통합 물산'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합병 전 SDI가 갖고 있던 제일모직 500만주가 통합 삼성물산과 합병되면서 이 고리로 합쳐졌다. 2015년 10월 보고서에서 공정위는 이를 기존 순환출자 고리의 강화로 보고 원래 상태로 돌리기 위해 삼성SDI가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삼성전기와 삼성SDI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통합 삼성물산 지분 1000만주를 처분해야 했다. 통합 삼성물산은 사실상 지주회사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당시 1000만주의 가치는 약 1조4500억원에 달했다. 삼성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규모였다.

이 보고서는 정재찬 당시 공정위원장의 최종 결재까지 받은 상태였다. 공정위는 삼성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보고서 내용을 미리 알렸다. 이 즈음 청와대의 압박이 시작됐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처분 주식 규모를 500만주로 줄여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전 부위원장은 실무진의 반대를 묵살하고 삼성SDI가 500만주만 처분하게 하는 명령안이 담긴 보고서를 만들어 정 전 위원장에게 올렸다. 

정 전 위원장의 최종 결재가 늦어지자 안 전 수석이 직접 나서 공정위를 압박했다. 최상목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한 진술에 따르면 안 전 경제수석이 "왜 늦어지냐. 빨리 결정하라고 부위원장에게 말해보라"며 500만주 처분 명령으로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 전 위원장은 이를 전해듣고 김 전 부위원장에게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의견을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500만주 처분 명령이 더 합리적이라고 최 전 부총리에게 보고해 동의를 얻어냈다. 정 전 위원장은 최 전 부총리의 의사를 확인한 뒤 보고서에 서명했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순환출자 해소 문제는 대략적으로 전해듣기만 했을 뿐 자신이 결정한 것은 없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그룹 지분 문제는 김종중 사장이 관리한다"며 "공정위에서 500만주를 처분하라고 한 것은 알고있지만 1000만주 부분은 모르는 내용이다.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세부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 사건에 대해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다"며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부였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것은 사후 결과일 뿐 승계작업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의 3대 포인트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이 부회장 등의 운명은 올해 대법원에서 결정된다. 대법원에서 다룰 국정농단 사건의 법리적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안종범 수첩'에 적힌 글들을 증거로 인정해야 할지 △둘째,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도 '제3자 뇌물죄'가 아닌 '단순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셋째, '포괄적·묵시적 부정청탁'만으로 제3자 뇌물 혐의를 유죄로 판단할 수 있는지다.

형사소송법은 남이 전한 말이나 글과 같은 '전문'을 원칙적으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카더라 통신'을 바탕으로 처벌을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경우엔 발언 당사자를 직접 법정에 불러 진위 여부를 따지고 나서 증거능력을 판단해야 한다. 이른바 '전문증거법칙'이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말한 내용을 수첩에 그대로 받아적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그러면서도 수첩 속 내용에 대해 대부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메모 내용을 종합해볼 때 박 전 대통령이 이런 취지로 지시했던 것 아닌가"라고 물으면 "그런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발언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은 수첩 내용에 대해 "모르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특히 이 부회장과의 독대 당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에 대해 이 수첩은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최순실·이 부회장의 1심 재판에서 이 수첩은 간접증거로만 인정됐다. 전문증거법칙에 따라 수첩만 갖고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다만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받아적었다"라고 여러 차례 확인한 만큼 수첩 속 메모들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재판부마다 판단이 갈렸다.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은 간접증거로도 쓰일 수 없다고 봤다. 반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2심 재판부는 수첩 속 메모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내린 지시사항과 독대 당시 이 부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나눈 대화를 전달받았다는 부분 두 가지로 나눠 각각 다른 판단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부분은 증거로 인정하고, 총수들과의 대화를 전달받았다는 부분은 간접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앞으로 뇌물·횡령·배임 등 중대 부패범죄에서 하급자의 메모를 어디까지 증거로 인정할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쟁점은 '제3자 뇌물죄'과 '단순 뇌물죄'다. 원래 뇌물죄는 공무원이 돈을 받았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이 돈을 받은 경우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사건에서 만약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이 부회장에 대해 단순 뇌물죄가 아닌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다면 이들은 뇌물죄에서 빠져 나갈 여지가 생긴다. 제3자 뇌물죄는 단순 뇌물죄보다 법리적으로 인정받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뇌물을 건넨 사람과 공무원 사이에 '부정청탁'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해서다. 반면 단순 뇌물죄는 공무원 직무와의 관련성만 증명하면 된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이 부회장의 1·2심 판결문을 놓고 살펴보면 각 재판부는 최순실과 같은 일반인도 단순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무원과 '공동정범'이라면 일반인도 단순 뇌물죄의 공범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렇게 볼 경우 제3자 뇌물죄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부정청탁 문제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최순실 후원과 경영권 승계작업 지원을 놓고 직접적으로 부정청탁을 주고받지는 않았다는 점에선 재판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문제는 법률적으로 '포괄적·묵시적 부정청탁'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1·2심 재판부와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삼성 뇌물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 부정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두 사람이 세차례 독대하면서 직접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특검이 승계작업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정확히 무엇이 청탁 대상인지 특정할 수 없다며 포괄적·묵시적 부정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던 이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부회장 등의 운명을 가를 최종 판단은 결국 대법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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