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신뢰 상실, 시대정신 외면과 특권의식 탓"

조재연 신임 법원행정처장 취임사 "법대 위에서 내려와 작은 데서 신뢰 얻어야"

황국상 기자 2019.01.11 10:10
지난 4일 신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된 조재연(63·법연수원 12기) 대법관. 대법원은 지난 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오는 11일자로 조 대법관을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후임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7년 7월, 취임식에 참석한 조재연 대법관. / 사진제공=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전직 대법원장으로서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에 소환된 날, 사법부 신뢰 상실이 "법관의 특권 의식"과 "시대정신 외면 탓"이라는 통렬한 반성의 목소리가 고위 법관에게서 나왔다.

조재연 신임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고 불신과 비난에 직면하게 된, 분쟁 해결 기관인 법원이 분쟁의 중심에서 국민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게 된 이유가 뭐냐"며 "오랜 세월 사법부의 닫힌 성 안에 안주해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외면해 왔던 게 아니냐. 개인 성향과 법관의 양심을 혼동하거나, 국민 인권 보호를 위해 부여된 법관의 독립을 특권으로 인식하며 기댄 적은 없었냐"고 질문을 던졌다.

조 처장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시민 참여가 확대되고 있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고양되고 있다"며 "사법부가 이런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에 둔감했던 게 아닌지, 진지한 반성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우리의 시각과 관점은 우리 내부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국민의 시각과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 사법 제공자가 아닌 사법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우리 사법부가 공정하고 적정한 최선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법 제도에 대한 평가는 이를 접하는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에는 세상천지의 온갖 사람들이 찾아온다. 우리는 법대 위에서 이들을 내려다보아만 왔다. 그러다보면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인지 잊기 쉽다"며 "법원은 이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모든 사건관계인들을 존중해야 한다. 몸은 법대 위에 있어도 마음은 법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너진 사법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제도와 의식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법관들이 처리하는 사건 하나하나에서, 법원 직원들이 마주하는 민원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즉 가까운 곳과 작은 일에서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며 "사법정의와 사법신뢰는 소액사건 심판 법정에서부터 세워져야 한다. 시·군 법원을 찾아와 호소하는 서민 대중들로부터 가장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조 처장은 "재판에 승복하지 않고 사법제도를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 당장 사회적 갈등을 폭력이나 악다구니로 또는 사법절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며 "과거의 잘못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원칙에서 벗어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를 시정하고 단죄하는 일도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또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이에 따라달라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며 "저부터 사법부 내·외부를 망라하여 지혜와 중지를 모으고,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공감과 지지를 얻는 방법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나가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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