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처벌로도 해결못할 과제

[황국상의 침소봉대]

황국상 기자 2019.01.14 13:02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에 앞서 지난 1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봉직하고 있음을 굽어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사법의 발전이나 회의를 통해 나라가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한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난 11일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메시지다. 아직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한 시대가 종지부를 찍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경남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양 전 대법원장은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단 50명에 불과했다. 197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된 후 2017년 9월까지 42년을 판사로 지냈다. 서울 이외 지역에 근무한 것은 1980년 대구지법, 1993년 부산고법 등을 다 더해도 채 10년이 안된다. 전체 법관 경력 중 12년을 대법관 또는 대법원장으로 복무했다. 사법부를 대표하는 초엘리트의 상징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이었다.

그랬던 그가 재판을 미끼 삼아 정권에 아부하고, 비판 성향 법관들을 탄압했다는 의혹을 사면서까지 얻어내려 했던 게 '상고법원'이었다. 대법원에서 심리할 만한 사건만 추려내서 심도 있게 처리하고 나머지 사건들은 상고법원에서 일거에 처리하도록 하자는 방법이었다.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부가 예산 편성권도, 법률안 제출권도 없다보니 예산과 시행령 제정권을 가진 정부와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상고법원이야말로 만성적 사건 적체를 해소할 최선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이를 실현시킬 방법이 없다보니 정권과의 결탁, 내부 탄압이라는 잘못된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1년에 4만6000건의 본안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다. 대법관 1명이 처리해야 할 사건은 3800여건에 달한다. 제대로 된 심리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1심에 접수되는 본안사건도 2017년 기준 135만건에 달한다. 참고로 전국 판사의 수는 3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검찰은 지난 11, 12일 연이어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추가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 등을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에 적용된 혐의의 유·무죄 여부를 법원에서 가리는 과정도 올해 중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까. 양 전 대법원장과 그와 함께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전직 고위 법관들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고 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더라도, 고질적인 사건 적체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손발은 여전히 묶여 있다. 사건 적체 해소방안 수립은 커녕 사건 당사자 구제에 필요한 예산도 제때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도 그대로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잘못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양 전 대법원장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사법제도 개편안을 다시 꺼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을 뿐이다.

한 서울 지역 현직 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지켜보며 "이제는 양 전 대법원장을 보내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을 지탄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좋은 재판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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