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세훈의 '죄와 벌'

14개월 간 9번 기소…정의로운 재판은 피고인의 인권도 지키는데서 출발한다

김종훈 기자 2019.01.27 16:47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4년 불면증과 소화불량으로 구치소 생활이 힘들다고 보석을 신청했으나, 기각된 적이 있다. 이런 원 전 원장의 심리상태가 요즘은 더 심해져 최근엔 불안장애까지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원인은 최근 집중된 수사와 재판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14개월 동안 불법사찰과 여론조작, 국정원 예산 횡령 등 혐의로 원 전 원장을 9번이나 기소했다. 

원 전 원장 사건은 3개 재판부에서 나눠 맡았다. 사건이 9개나 되는 데다 기소가 3~4개월에 한 번 꼴로 이뤄졌다. 심리를 해볼 만하면 새 사건이 추가되는 식이라 법정에서 사건을 병합하기도 쉽지 않았다. 일정이 몰릴 때는 하루에 3개 사건 재판이 열린 적도 있었다. 지금은 재판부 판단 아래 일부 사건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14개월, 9번 기소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혐의가 여러 개인 피고인은 되도록 한 번에 기소하는 것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바람직하다. 원 전 원장처럼 한꺼번에 여러 건의 기소를 당하면 재판 부담이 커져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원 전 원장의 경우 워낙 혐의가 많고 수사가 다방면에서 이뤄져 일괄 기소가 어려웠을 수는 있다. 그래도 '쪼개기' 식으로 재판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례로 이명박정부 시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뒷조사했다는 사건과 권양숙 여사·박원순 서울시장을 사찰했다는 사건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6주 간격으로 나눠 기소됐다. 원 전 원장이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라는 단체를 차려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사건과 방송사 장악을 시도했다는 사건은 불과 2주일 간격으로 나눠 기소됐다.

원 전 원장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이쯤해두자는 건 결코 아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공작을 벌여 민주질서 파괴를 시도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죄가 있다면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수사와 재판은 형벌 결정에 앞서 사건의 진실을 찾는 절차다. 피고인을 벌세우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 피고인도 인간이고 인권이 있다. 정의로운 재판은 피고인의 인권도 지키는데서 출발한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