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간의 검찰 수사…오욕의 '사상 최초' 기록들

양승태, 헌정사상 첫 구속기소된 전직 대법원장 불명예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2.11 14:07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재판, 옛 통합진보당 지방·국회의원 지위확인 행정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9.1.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이 구속 기소되면서 장장 8개월의 '사법농단 의혹' 검찰 수사가 일단락됐다. 8개월간 쉼 없이 달려온 사법농단 수사는 사상 첫 대법원 강제수사,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 대법관 기소 등 오욕의 '사상 최초' 기록들을 역사에 새기게 됐다.

검찰 공개수사의 발단은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불법 사찰하고, 인사불이익을 줬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대법원 자체 조사였다. 조사 과정에서 2015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재판 직후 청와대(우병우 당시 민정수석)가 대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재판권 독립 침해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더해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전교조 법외노조나 통합진보당, KTX 등 특정 재판 결과를 협상 카드로 삼아 상고법원 도입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협조를 끌어내는 방안을 검토한 내용이 대거 드러나면서 '재판거래' 의혹이 확산됐고,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자택 앞에서 "재판 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으나 김 대법원장은 곧바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수사 협조"를 천명했다.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모든 조사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법원장 명의로 수사의뢰나 형사고발을 하는 대신 검찰에 실체 규명 작업의 공을 넘겼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사건을 '최정예'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로 재배당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파견 검사를 합쳐 총 50여명의 검사가 투입된 대규모 수사팀(팀장 3차장검사 한동훈)이 꾸려졌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양 전 대법원장 PC의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자기장 이용 데이터 물리적 삭제)'됐고, 대법관들의 PC 역시 디가우징된 상태였다.

압수수색 역시 순탄치 않았다. 7월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당하는 등 난관에 부딪쳤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인사심의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됐다. 현직 법관들에 대해선 사실상 영장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검찰이 수십 차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이 법원에서 발부된 비율은 10% 수준에 그쳤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0%로, 평소의 1/10 수준만 발부해준 셈이다. 이때 법원이 얻은 별명이 '방탄판사단'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영장 기각시마다 기각사유를 외부에 공표하며 부당성을 강조하고 법원과 날을 세웠다. '수사를 돕겠다던 법원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반발이었다.

검찰과 법원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계속되자 검찰은 지난해 8월부터 외곽으로 수사력을 집중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해 재판을 연기하려 시도했다고 의심한 검찰은 외교부 국제법률국·동북아국·기획조정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여기서 대법원 법원행정처장들이 청와대 비서실장, 외교부 장관 등과 회동을 가진 문건을 찾아냈다. 대법원의 일선 재판 개입 정황이 실제로 드러난 것이었다.

의혹이 일부 소명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9월에는 사법부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청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지난 2015년 법원행정처가 전국 법원에 공보판사실 운영지원비로 내려보낸 예산을 허위 사용 명목을 입력한 뒤 현금으로 거둬들여 ‘비자금’을 조성, 고위 법관들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건넸다는 의혹과 관련해서였다. 이후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 사무실,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허용됐다.

'헌정사상 최초'는 계속 이어졌다. 11월에는 차한성 전 대법관이 소환됐다. 전직 대법관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던 시절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재판 지연을 논의하는 등 재판개입에 관련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였다. 1차 조사를 맡았던 이인복 전 대법관을 비롯해 피의자 신분의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고영한 전 대법관(63·11기) 등도 줄줄이 소환됐다.

12월엔 전직 대법관에 대한 사상 첫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법관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처음이었다. 검찰은 권순일·이동원·노정희 대법관 등 현직 대법관들에 대한 서면조사도 사상 처음으로 실시했다. 올해 1월 11일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처음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5일 그는 구속됐고, 2월 11일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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