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제주항공 연착 두고 소송, 쟁점은 항공사 '합리적 조치'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3.24 13:55
제주항공이 운행중인 항공기

항공기 결함으로 약 20시간 동안 필리핀에 발이 묶였던 국내 승객 77명이 제주항공(사장 이석주)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그 동안 국내에선 항공기가 지연되거나 결항돼도 '소비자 안전'을 이유로 정비 불량이나 부실한 안전관리 등 사업자 과실을 문제삼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승객들이 항공기 지연·연착으로 인한 개인적 손해를 더이상 참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주항공, 손해 회피위한 '합리적 조치' 했나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제주항공이 당시 손해를 회피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다했는지 여부다. 우선 '국제선' 비행기 연착·결항으로 인한 분쟁을 조율하는 법은 국내 상법이나 민법이 아니라 국제항공협약인 '몬트리올 협약(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이다.

협약은 원칙적으로 '운송인(항공사)은 승객 수하물 또는 화물의 항공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항공사가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거나 또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도 규정한다. 중요한 건 뒤쪽 문장이다. 즉 제주항공이 '결항으로 인한 손해를 피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다했다면 손해배상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합리적 조치' 이행 여부를 두고 법원은 △항공사가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정비의무를 다해도 피할 수 없는 결함이었는지(부품의 점검 주기 및 문제점 발견 여부, 기체 설계 차원의 결함 유무 등) △기장 및 승무원이 비상대응조치 매뉴얼 등에 따라 행동했는지 △승객들에게 숙박 및 교통편, 대체항공편을 제공했는지 △대체항공편 투입에 소요된 시간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타 항공사-승객간 소송에서도 '합리적 조치'가 핵심 쟁점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승객들이 최종 승소한 '이스타항공 소송'에서도 항공사가 운항지연에 의한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지난 2017년 8월 기체 결함으로 부산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를 오가는 항공편이 2차례 연속 결항해 승객들에게 37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첫 번째 비행기는 왼쪽 바퀴다리 올림 감지기 작동불량, 대체항공편은 엔진출력제어부의 기능불량으로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다. 당시 승객들 119명은 이스타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이 소송은 대법원에서 상고취하로 원고 일부승소 확정됐다.

당시 이스타항공은 "좌측 바퀴다리 올림 감지기의 작동불량 문제는 사소한 정비사항에 불과하고 이러한 사소한 부품의 기능저하까지 사전에 모두 예방할 수는 없으며, 제2항공기의 운항이 취소된 것은 ECC의 기능불량 때문이었는데 이는 사전 징후 없이 갑자기 발생한 고장으로 당시 내린 폭우로 인한 합선 때문"이라며 "운항지연에 관해 사전에 문자 메시지로 안내하거나 탑승구에서 육성으로 필요한 안내를 해 주었고, 저가항공사라는 점과 현지 물가수준 등을 고려해 원고들에게 적정한 형태의 추가 숙박 및 식사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손해를 피하기 위한 조치를 모두 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에게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정비의무를 다해도 기체결함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스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계상 결함" 주장해 면책된 경우도

항공사가 합리적 조치를 취했다고 인정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07년 1월 코타키나발루를 출발해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8674편 항공기는 엔진 이상으로 우측 엔진만이 작동된 상태로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으로 회항했다. 당시 고압터빈 앞에 설치되어 있는 공기흐름안내장치가 떨어져 나가면서 터빈 내부 부품이 파손, 연이어 엔진 진동이 다른 부품들을 파손시키면서 왼쪽 엔진이 기능을 상실했다.

법정에서 대한항공은 "엔진 부품의 설계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며 면책을 주장했다. 아무리 정비를 해도 설계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인 프랫앤휘트니는 해당 부품에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인정했고, 이에 법원은 대한항공이 연착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합리적인 수준의 손해방지조치를 했고, 사실상 항공사 조치만으로는 결항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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