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첫 재판서 공소장 '퇴짜' 맞은 검찰

"선입견·편견 우려돼" 첫 재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지적·수정 요구

김종훈 기자 2019.03.25 14:21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그대로 재판하는 게 맞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검찰의 공소제기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고 공소장을 다시 써올 것을 요구했다. 공소제기의 기본 원칙인 공소장 일본주의를 어기고 선입견을 줄 수 있는 공소장을 써왔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25일 오전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대법관(63·11기), 박병대 전 대법관(62·12기) 재판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이기 때문에 피고인들이 직접 법정에 나오지는 않았다.

보통 공판준비기일은 검찰이 공소사실을 낭독하면서 시작되지만 재판부는 공소사실 낭독을 생략했다. 대신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문제를 지적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 있는 내용들만 공소장에 적어 법원에 제출해야 하며,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어떤 자료도 첨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선입견 없이 재판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일종의 안전장치다.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한 공소제기에 대해서는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변호인 의견도 있지만 재판부가 보기에도 최초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을 그대로 두고서 재판을 진행하기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조금 지적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재판 관련 내용을 설명한 부분을 예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 부분 공소사실 관련해서 '한편 주심 대법관 고영한'이라고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고 전 대법관에 대해 기소된 것은 없다"며 "공소사실하고 직접 관련이 없어서 불필요하거나 법관에게 피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런 부분을 그대로 두는 상태에서 재판하는 게 맞을지 의구심이 든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 다 (언급)한 것은 아니고 지금 몇 가지 예만 들었다"며 "기소된 공소사실하고 직접 관계되지 않으면서 너무 장황하게 불필요하게 기재된 부분(이 있고) 공소제기 취지가 약간 불분명한 부분 등도 말한 것 이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 공판절차에 들어가기 전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저희 재판부가 협의해서 정식으로 서면을 통해 지적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번 검토해보고 이건 일종의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라며 "괜찮겠다 하면 변경해주고 반드시 공소장 변경요구에 응할 의무는 없다. 검찰이 '변경이 필요 없다', '우리는 이대로 가겠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는 정확한 경위를 설시하지 않으면 왜 직권남용인지 또 피고인들이 도대체 뭘 방어할지 방어권 행사에 장애가 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점을 감안해 피고인들이 어떤 범행에 가담해 직권을 남용했는지 전후사정이나 범행동기,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설명하려면 여러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후 공판기일에서 공소사실을 다섯 갈래로 나누고 차례대로 증거조사를 해나갈 예정이다. 일단은 서류증거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2차 공판준비기일은 다음 달 15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한편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47개 범죄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유형별로 따지면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조직의 이익을 불법적으로 도모 △법원 내 사법부 비판세력 탄압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등이다. 이중 핵심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다. 일제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 개입해 재판이 청와대와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뒷배를 봐줬다는 것이 골자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