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인한 빈곤추락, 대응책 마련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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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2019.03.27 05:00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영국과 한국, 사회보험의 간극 

영국 영화인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영화이다. 보통 영화에서 나오는 공무원들의 차갑고 기계적인 대응에 초점을 맞추지만, 영국과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을 비교하는 좋은 강의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영화에서 나온 각종 수당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정리하면 이러하다.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다니엘은 의사의 견해를 따라 질병수당을 신청했지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대신 실업수당을 신청하려고 하였지만, 신청방식이 온라인밖에 없어서 컴맹인 다니엘은 신청조차도 어렵다. 어렵게 주위의 도움으로 신청한 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구직 활동을 시작했으나, 건강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다, 다니엘은 질병 수당 기각 결정을 다투기 위해 항고 하였지만, 항고일에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일 못 하는 이유에 따른 두 개의 수당

영화에서 나오는 두 개의 수당(급여)이 있다. 사회보험의 일종인 ‘질병수당(상병수당)’과 ‘실업수당(실업급여)’이다. 특정한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대부분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위험을 ‘사회적 위험’이라고 하고, 그 위험을 사회가 공동으로 대비하려고 만든 것이 ‘사회보험’이다. ‘실업’이 대표적인 사회적 위험이다. 실업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고, 오히려 최근에는 그 위험이 갈수록 커져 간다.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실업’의 사회적 위험을 크게 두 축으로 대응한다.  업무와 관련성이 없는 개인적 질병이 원인인 때에는 ‘질병수당’으로, 질병과 관련이 없을 때에는 ‘실업수당’으로 보호한다. 활동업무상 부상이나 질병이 원인일 때에는 별도로 산업재해로 보호한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선 다니엘은 목수로 일하다가 개인적인 심장질환으로 일을 못 하게 되었기 때문에 산업재해의 대상이 아니다. 남은 것은 질병수당과 실업수당이다. 다니엘은 심장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질병수당을 신청했지만, 공무원은 그 정도로 아프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그래서 다니엘은 실업수당이라도 받으려고 일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고, 다시 질병수당에 도전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다니엘, 영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다니엘 블레이크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안타깝지만 우리는 질병수당 자체가 ‘없다’. 아프면 건강보험으로 치료는 가능하지만, 아파서 직장을 그만둘 때는 고스란히 그 위험을 개인이 부담한다.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기업복지 차원에서 단체협약 등으로 유급상병휴가 제도를 운영하지만, 취약계층이 주로 근무하는 중소기업에는 거의 운영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집이나 보증금 등 남은 자산이 소진될 때를 기다려 기초생활급여를 받는 방안이 있다. 다니엘처럼 자기 집이 있으면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긴급복지지원은 안정성이 없다.

여기에 영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실업수당(실업급여)을 받으려면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적극적인 구직활동이 요건이기 때문에 아픈 상황에서는 실업수당이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적극적인 구직활동의 개념이 애매해서 법적 분쟁이 발생한다. 필자가 일하는 법 센터에서도 탈락한 구직처에 다시 지원하여 떨어지니까, 행정기관에서 형식적인 구직활동이라는 이유로 실업급여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 사정을 따지지 않고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해서 취소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위험을 어떻게 촘촘히 대비하느냐가 중요해 지고 있다.  다니엘은 영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최후는 좋지 않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일단 만들어 놓고 고치는 것이 낫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생계를 위해 출근길에 나서는 모습은 서글프다. 아파서 직장을 그만두면 재취업도 어렵다. 며칠 전인 6일 정부는 저소득층 구직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의 밑그림이 노·사·정 합의로 마련됐다고 발표했지만, 다니엘의 경우까지 보호대상에 포함될 것 같지는 않다. 병 때문에 빈곤으로 떨어질 사회적 위험은, 이제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상훈 변호사는 서울시복지재단 내에 있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하려고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한 후, 노동사회, 언론개혁, 정보공개, 탈핵, 사법개혁, 사회책임투자, 소액주주, 과거사 등 남부럽지 않은 여러 시민운동을 경험하였고, 현재는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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