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헤어진 아들, 불쑥 나타나 상속 요구에 소송까지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조혜정 변호사 2019.04.10 05:00

Q) 남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아 평생을 숨겨왔던 저의 비밀 때문에 질문을 드립니다. 40년 전 제가 스무 살을 갓 넘겼던 때에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그 남자가 결혼하자고 했고, 당연히 결혼할 줄로 알고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유부남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헤어지자고 했더니 부인과는 이미 끝난 사이라며 이혼하겠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임신을 했고 아들을 낳게 되었고요. 하지만, 그 사람은 끝내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유부남인 줄 알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아들이 돌이 될 무렵 그 남자와 헤어졌고 아들은 그 남자에게 보냈습니다. 어린 아들을 두고 나오는 결정이 정말 괴로웠지만 부모님이 완강히 반대를 하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집에서 쫓겨났고 우울하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몇 년 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고 평온하게 살았습니다. 남편에게는 놓고 나온 아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만 아이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다 1년 전쯤 그때 놓고 나왔던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저를 찾았는지 의아하긴 했지만 어쨌든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아들을 만났습니다. 같이 산 기간이 얼마 안 되고 너무 오래전에 헤어진 터라 내 자식이란 생각은 별로 안 들고 낯설었지만, 그래도 아들을 키워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두어 번 만났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아들은 저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하다 실패해서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도 남편이 남긴 저축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라 도와줄 수 없어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제가 집을 한 채 가진 걸 알고, 자기도 자식이라 그 집에 대한 상속권이 있다면서 상속포기한다는 각서를 쓸 테니 자기가 상속받을 몫을 지금 달라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라서 더 이상 아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인연을 끊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법원에서 소장이 날라왔습니다. 아들이 저한테 인지청구를 한 것이었습니다. 인지청구가 뭔지 몰라서 알아봤더니 인지청구가 되면 아들이 제 호적에 자식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아들이 제 호적에 들어오게 되면 아이들이 다 알게 될 텐데 저는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인지청구소송을 한 목적은 호적을 고쳐서 제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것밖에 없는 것이 분명한데 저는 이런 아들을 제 호적에 들이고 싶은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네요. 저는 인지청구소송에서 아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법적인 자식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소송을 한 다음에도 아들은 변호사를 통해서 지금이라도 돈을 주면 상속포기 각서를 써주고 소송도 취하하겠다고 하네요. 아이들에게 아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 되나 고민되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집은 남편이 남긴 것이니까 당연히 남편과 낳은 아이들에게 상속이 되어야 하고, 제가 가진 저축은 유일한 노후 대책이니 줄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40년 만에 나타나서 제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막무가내로 돈만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는 상속을 해주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걸까요?

A) 참 당황스러운 상황이네요. 마음 고생이 심하시겠습니다. 40년 만에 아들을 만나서 반가우셨을 텐데 아들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니 많이 놀라고 실망하셨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아들만 그런 건 아닙니다. 선생님처럼 법적인 배우자가 아닌 상대와 자녀를 낳아 법적인 부모자식으로 가족관계등록부(호적제도는 2008. 1. 1.에 폐지되고 대신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에 기재되지 않은 경우, 법적인 자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소송을 하는 목적은 대부분 가족관계등록부 기재를 고쳐서 양육비를 받거나 상속을 받으려는 것이거든요. 씁쓸한 현실이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시고 너무 충격받지 마세요.

인지청구소송에 대해서 먼저 답변을 드릴께요. 인지란 용어가 낯설으실텐데, 인지(認知)란 친부 또는 친모가 혼인 외에서 낳은 아이에게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법률상 혼인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아이를 낳으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친부나 친모란을 공란으로 하거나 다른 사람을 기재하게 되는데, 이걸 제대로 고치기 위해 필요한 절차 중 하나가 인지입니다. 친부나 친모가 스스로 인지절차를 밟아주면 굳이 소송까지는 필요 없지만, 친부나 친모가 인지를 거부하면 자식은 친부 또는 친모에 대해서 인지청구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상 선생님이 아들의 친모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데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인지를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혼외자 아들이 인지청구소송을 하게 된 것이고요. 

인지청구소송을 하게 되면 법원에서는 유전자검사결과를 근거로 해서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소송이 진행되면 아마 아들 측에서 유전자 검사를 같이 받자고 연락이 올 겁니다. 선생님은 그 요청에 응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검사를 끝까지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을 경우 법원이 유전자검사를 받으라는 수검명령을 내려서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명령에 불복할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30일 이하의 감치(법정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자에 대한 제재인데 경찰서 유치장, 교소도, 구치소에 유치하여 집행합니다)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끝까지 유전자 검사를 거부한 경우에 유전자검사 없이 인지청구를 받아들여준 판례도 있고요. 

유전자검사결과 어머니와 아들 관계로 인정되면 그 결과만 가지고 법원은 아들의 인지청구를 받아들여줍니다. 선생님께서 이미 40년 전에 헤어져서 애정이 없고 부모 자식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항변을 하셔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법률상 부모자식관계는 유전자검사라는 생물학적인 근거만을 갖고 결정하는 것이지, 당사자들의 감정이나 희망은 고려하지 않거든요.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선생님의 아들이 맞다면 아들은 인지청구에서 승소하고 가족관계등록부기재를 고칠 수 있습니다. 

인지청구소송의 결과 아들이 선생님의 법적인 자식으로 인정된다면 아들은 선생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돈을 주면 자기 상속권을 포기하겠다는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셔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법원은 상속이 개시되기 전, 즉 상속을 해줄 부모가 사망하기 전에 미리 상속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시한다고 해도 그 의사표시는 법률상 무효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그렇게 보는 근거는 상속권은 상속이 개시되는 시점(부모가 사망하는 시점)에 비로소 발생을 하는 것이라서, 부모 사망 전에 상속을 포기하면 아직 발생도 하지 않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서 안된다는 겁니다. 법원이 이렇게 보고 있는 현실적인 이유는 상속개시 전의 상속포기가 법률상 효력이 있다고 하면 부모나 형제 중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협박하거나 구슬려서 미리 상속권을 포기시킬 수 있는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들이 지금 돈을 받고 선생님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각서는 무효라서 아들은 상속포기각서내용을 지킬 의무가 없고 선생님 사후에 태도를 바꿔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들의 제안은 법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들은 이런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는 이유는 선생님이 법률에 무지할 거라고 얕잡아 보는 듯합니다.  

자녀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담되시겠지만 그렇다고 혼외자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시는 건 현명하지 못합니다. 선생님께서 혼외자 아들에게 돈을 줄 생각이 없으시다면 지금이라도 자녀들에게 혼외자 아들의 존재를 알리고 같이 대책을 의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인지청구소송이 끝나면 자녀들도 알게 될 것이거든요. 자녀들도 이미 성인이니 선생님을 이해해줄 겁니다. 선생님의 결정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20년간 가사소송 등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지난 20년간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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