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외국투자자도 걱정하는 '한국 상속세'

"할증세율 적용시 65%,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저해 요인" 지적… 상속분쟁 통로 이원화한 현 제도도 상속분쟁 복잡 초래

황국상 기자 2019.04.15 05:00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한국 일부에서 '터널링'(Tunneling, 거래망에 자녀 소유의 자회사를 끼워넣어 일감을 몰아주는 편법적 상속·증여방식)을 하려고 하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상속세율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이익잉여금을 배당 형태로 주주들과 나누기보다는 터널링을 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에서나 할 법한 얘기로 들리지만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미국의 캘퍼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네덜란드공적연금(APG) 관계자의 멘트다. APG에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담당하는 박유경·김정남 APG 이사는 지난 11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오너들이 지배구조 개선정책에 강경하게 반대하게 하는 주요 이유로 '가혹한 상속제도'를 꼽았다. (4월12일자, 구글, 페북, 알리바바는 되는데 카카오는 안되는 법은?)

한국의 상속세는 기본세율이 50%다. 30억원 이상의 자산을 물려받게 되면 일단 50%의 세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상속대상 자산이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지분일 경우 세율은 65%까지 높아진다. 가액으로 환산했을 때 1조원 상당의 지분을 상속받은 이들은 650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에 대한 지배권이 '최대주주의 사망'이라는 하나의 이벤트로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이 같은 우려는 최근 별세한 고(故)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이 과도할 정도로 '경영권 방어'에 집착하는 한국기업 오너들의 행태로 나타난다는 게 박·김 이사의 지적이다. 다른 주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이 부여된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상장사들의 지분은 대주주나 기관투자자 외에도 많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분산돼 있다. 지배구조가 한 단계 나빠지면 그 영향이 미치는 범위는 매우 크다. 한국 주식의 배당성향이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은 것도 '가혹한 상속세율' 때문일 수 있다.

박·김 이사는 상속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기업, 특히 재벌 오너 일가에게 '극히 일부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을 뿐임에도 순환출자를 통해 기형적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한다'며 지배력 해체를 추진하도록 하면서 이를 상속하는 과정에서는 '기업지배력이 있는 지분'이라는 이유로 상속세율을 할증하는 것은 재계가 더욱 안으로만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었다.

그런데 상속세율만 손본다고 해서 기업이 안정적으로 승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령은 상속재산과 관련한 기여분을 청구하는 경우나 상속인 사이에서의 상속재산분할은 가정법원이, 유류분 반환청구는 지방법원이 나눠서 관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통로가 이원화돼 있다는 얘기다. 

'상속재산의 분할'을 둘러싼 다툼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현행 제도는 기여분청구와 상속재산분할청구만 가사비송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가정법원이 관할토록 하고 있다. 유류분 반환청구는 민사소송이라는 이유로 가정법원이 아닌 지방법원 민사 재판부가 담당한다. 상속재산 관련 분쟁의 이원화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 당사자들의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유류분 사건 등 가사관련 사건들을 가정법원으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가사소송법 개정안은 수년째 공전하고 있다.

상속제도 하나만으로도 기업의 안정적 승계를 통한 기업가 정신 제고와 법인세율의 현실화를 통한 세수증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 등이 가능할 수도 있다. 법률 전문가뿐 아니라 정책 담당자, 재계·사회단체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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