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氏]'보이스피싱 범죄수익' 훔쳐쓰면 '횡령'일까

대포통장 제공하고 대가 못 받자 범행 결심…'위탁관계' 존재 여부 쟁점

김종훈 기자 2019.04.16 05:35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MBC에브리원 예능 '도시경찰'이 최근 종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경찰 수사관으로 부임해 크고 작은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보이스피싱 사건 수사 과정도 방영됐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의심받는 혐의자를 연예인 수사관들이 직접 현행범 체포하는 장면도 있었다. 

방송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대포통장 사건으로 고소장이 접수됐다면서 피해자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검사와 연결해주겠다며 휴대전화에 '경찰청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줬다고 한다. 물론 이 앱은 휴대폰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앱'이었다. 돈을 직접 요구하면 보이스피싱으로 의심을 받으니 그럴 듯한 모양새를 꾸며 피해자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대담한 수법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돈을 훔쳐낸 사건이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을 팔려고 시도한 A씨의 사건(2017도17494)이다. A씨는 통장을 넘겼음에도 약속한 대가가 돌아오지 않자 보이스피싱 조직의 돈을 빼돌리기로 마음먹었다. 통장을 하나 더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긴 뒤,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이 이 통장에 입금되면 조직원들보다 빨리 돈을 찾아 써버리자는 심산이었다. A씨는 이 수법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뜯어낸 돈 수백만원을 빼냈다.

검찰은 이 같은 행위에 대해 횡령 혐의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지만 1·2심은 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행위가 횡령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위탁이라는 신임관계에 반해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함으로써 성립한다고 돼 있다. 1·2심은 A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 또는 A씨와 사기 피해자 사이에 법률적인 위탁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이 판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뒤집혔다. 다수의견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통장에 입금된 돈은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에게 반환돼야 할 돈이므로 A씨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보관하고 있던 것이 맞다고 봤다. 따라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며 "피해자를 위해 사기 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다수의견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에 대해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1·2심 판단은 수긍했다.

다수의견의 판단대로 횡령죄가 성립하는 것은 맞지만, 그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별개의견도 있었다. 별개의견은 통장을 제공한 A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 사이에 '계좌를 사용하게 해주고 A씨는 그 계좌에 입금된 돈은 손대지 않는다'는 약정이 있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횡령죄가 요구하는 위탁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1·2심 판단처럼 위탁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횡령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관련조문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①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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