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친환경' 에티튜드의 배신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트라우마

인과관계 입증하기 어려운 화학물질 피해

이미호 기자 2019.04.21 12:31
사용금지 성분 CMIT, MIT가 검출돼 회수 조치된 에티튜드 무향 제품/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좀 전에 우리 아이 젖병 그걸로 닦았는데…"

캐나다 친환경 브랜드 에티튜드에서 만든 젖병 세정제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발표에 소비자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다른 세제보다 가격이 더 비싸지만 '친환경'이라는 믿음 때문에 해당 제품을 선택한 엄마들 입장에서는 뒤늦은 정부 대응에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가습기살균제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옥시·SK케미칼·애경산업 등이 제조·유통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239명, 심각한 폐질환을 호소한 경우가 1500여명(환경보건시민센터 접수 기준)에 달한다. 그야말로 가습기살균제 성분은 생명을 위협하는 독성물질로 각인돼 있다.

이러한 와중에 엄마들 사이에선 너무나 잘 알려진 제품에 문제의 '그 성분'이 있다고 하니,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해가 갔을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지는 것이 사실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필자도 아이들 어릴 적 젖병세제로 에티튜드를 썼다.)

문제는 해당 성분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가장 애를 먹고 있는 부분이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인체실험이 가능하다면 밝혀낼 수도 있겠지만, 동물실험의 경우 어떤 동물로, 어떤 조건에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또 원료에 다른 원료를 소량 추가하거나 향이 나는 성분만 넣어도 인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과 검찰의 설명이다.

"해당 성분은 어떤 제품에도 사용되지 않았지만, 천연 원재료 일부에서 해당 성분이 혼입되면서 일어난 사고로 추정한다"는 캐나다 에티튜드 본사의 답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검찰은 제조 및 유통업체 책임자들이 안전성 검사를 거쳐야 하는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인정되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 신현우 전 대표도 같은 혐의로 실형 6년을 받았다. 

지난 18일 구속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역시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SK케미칼은 옥시 사태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았고,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적시한 증거들을 인멸했다. 애경산업은 '팔기만 한 우리는 아무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 법망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터진 '케모포비아' 사태는 우리를 다시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오늘 아침 아빠·엄마에게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하고 유치원과 학교에 간 우리 아이들의 몸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습기살균제 악몽'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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