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디스크와 형집행정지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4.25 15:05
과거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우리 정부의 형집행정지 제도는 국민들에게 인색하게 운영됐다. 형 집행정지란 징역, 금고 또는 구류의 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이 그 형을 이행하기 어려운 인도적 사유가 있을 때 일정기간 수형생활을 멈춰 주는 조치다. 형의 집행으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는 경우나 고령, 임신, 출산 등 형사소송법상 규정된 사유를 충족해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료를 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교정시설 내 사망한 재소자는 227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형(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다가 불허되거나 심사결정이 늦어져 사망한 재소자가 85명(37.4%)에 이르렀다. 2015년엔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던 58살 남성이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다음날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된 사건도 있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재범의 우려가 현저한 경우는 제외하고, 예후가 좋지 않은 병리학적 질병이 있거나 구금상태의 유지를 견뎌낼 만한 건강한 상태가 아닌 수형자에 한해 1회에 한해 형 집행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증상에 대해 2명의 다른 감정인의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검사와 형 선고를 받은 자, 변호인, 교도행정기관장의 의견을 참작하고 의학 감정이 필요하다. 독일에서는 행형처우가 '전혀'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러야만 한다.

미국은 '의학적 잔여수명이 1년 이내인 불치병'을 앓는 경우, 교도소에서 치료가 곤란한 영구적인 육체적, 정신적 질병 및 노화에 따른 건강악화 등 극히 예외적이고 합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교정국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잔여 형기를 면제해 줄 수 있도록 하는 연방법상의 특별석방제도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의학적 소견서 작성자가 제한되어 있고, 심사요건도 까다로워 2006년 이후 연평균 24명 정도 석방되는 정도에 그친다.

형집행정지는 형의 집행 이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인 만큼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지난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를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서울중앙지검에 신청했다. 법무부 역사상 디스크 증상으로 형 집행정지가 결정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부가 그간 운영했던 형집행정지 기준에 따라 그의 신청을 처리할지, 아니면 새로운 예외를 만들지 지켜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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