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 사건, 경찰이 막았을 수도'…법원 "국가가 배상해야"

경찰, 이영학 딸에 대해 묻지도 않고 잠 자느라 출동 안해…국가 책임범위는 손해액의 30%로 제한

안채원 기자 2019.05.26 17:41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사진=홍봉진 기자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당시 경찰 측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가 피해 여중생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7부(부장판사 오권철)는 피해 여중생 A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1억80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이영학 사건은 2017년 9월30일 이씨가 딸의 친구인 A양을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이고 추행한 뒤 다음날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A양은 '함께 영화를 보자'는 이씨 딸 제안으로 집에 따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A양의 어머니는 9월30일 밤 10시15분쯤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에 중랑경찰서는 이 사건 신고를 코드1(최우선적으로 출동해야 하는 신고)로 분류하고 망우지구대와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에 출동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응은 이뤄지지 않았다. 망우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이날 11시37분쯤 A양의 집에 도착했지만 '친구와 나간다고 말했다'는 유족 측 설명에도 친구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이후에도 A양의 마지막 행적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청 수사팀은 출동 지시 무전을 듣고도 '알았다'고만 응답한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들은 소파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거나 당직실에서 잠을 자느라 무전을 듣지도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경찰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이씨 딸을 조사했다면 손쉽게 A양의 위치를 알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A양의 사망에 경찰관들의 직무집행상 과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A양의 사망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면 이씨는 늦어도 A양을 살해하기 이전인 10월1일 오전에는 자신이 경찰 추적을 받고 있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며 "이씨가 지능적 면모를 보였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경찰 추적을 받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면 A양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범죄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국가와 피해를 직접 발생시키는 범행을 저지른 이씨의 행위를 동일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국가의 책임범위를 전체 손해액의 30%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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