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외이사는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나

황국상 기자 2019.05.28 16:08
이론상으로는 이사회는 경영진과 주주와 더불어 기업 지배구조의 3각 구도의 한 축을 이루는 존재다. 국가에 비유하자면 국회와 정부, 국민 중 국회에 해당하는 곳이 이사회다.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해 회사 전체와 주주, 나아가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역할이 이사회에 부과돼 있다. 사외이사도 엄연한 이사다. 상근업무에 종사하지 않을 뿐 역할과 책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현실은 많이 다르다. 일단 대다수 기업에서 이사회와 경영진, 대주주가 구분돼 있지 않다. 사외이사 역시 '방만·부실경영 감시·감독'이라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거수기'라고 불려왔다. 경영진이 마련한 안건에 기계적으로 '찬성'의 뜻으로 손을 든다는 뜻으로, 대주주나 경영진이 형식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자 할 때 사외이사들은 그저 구색으로만 활용돼왔음을 의미한다. 사외이사는 그간 경영진이나 대주주에게만 충성을 바쳐온 셈이다.

상법 등이 이사의 책임을 규정하며 사내·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지만 과거만 해도 사외이사들이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사외이사=거수기'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었다. 사내이사에 비해 가벼운 책임만 인정된다는 점 때문에 사외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는 점점 달라지고 있다. 법 규정의 취지와 어긋난 사외이사 제도를 그냥 둬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탓이다. 이미 법령·정관에 위배된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건들에서 피고 명단에 사외이사 이름이 오른 경우가 종종 확인된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에서 투자자들이 사외이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것도 같은 취지다.

최근 강원랜드가 150억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부실하게 집행하는 데 관여한 사외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명백한 위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감시·감독'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게을렀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도 막아야 한다. 애초부터 사외이사를 하지 말든지, 했다면 충성해야 할 대상이 경영진과 대주주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회사와 주주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사외이사가 설 곳은 이제 좁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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