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씨] 상대 축구 선수와 부딪혀 사지 마비된 골키퍼

가해자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 벗어나 안전배려의무 위반했는지 먼저 따져야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6.14 06:00

조기축구회에서 선수들끼리 서로 부딪혀 한쪽의 사지가 마비됐다면 상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법원의 판단기준을 다룬 사건(2017다203596)을 소개해드립니다.

지난 2014년 한 조기축구회에서 축구를 하던 골키퍼 A씨는 7월 13일 오전 계룡시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합을 했습니다. 상대팀 선수가 A씨가 지키던 골문 방향으로 센터링을 올렸고, A씨는 공을 처내기 위해 왼쪽 후방으로 손을 뻗으면서 다이빙 점프를 해 착지하다 공을 향해 이동하던 상대팀 공격수와 충돌했습니다. 상대 공격수의 머리가 A씨의 허리에 부딪혔고, A씨는 외상성 추간판 파열, 전방 척추인대 손상 등을 입었습니다.

A씨는 다음해 사지마비를 이유로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A씨와 그 가족들은 상대편 공격수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A씨 측은 "상대 공격수가 선수에 대한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 등을 위반해 발생한 사건으로 이는 A씨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11억여원을 청구했습니다.

상대 선수는 그러나 "사고는 원고와 피고가 서로 공을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축구경기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내재적 위험범위 내의 우발적 사고"라며 "피고는 축구경기상 어떠한 주의의무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1심 법원인 대전지법 논산지원은 상대 공격수가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A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1심 법원은 "골키퍼인 원고는 점프를 해 공을 쳐내려고 하고 공격수인 피고는 공을 잡기 위해 공을 향해 갔으나, 충돌 당시 공은 점프한 원고의 머리 위를 지나 날아가서 두 사람 모두 공을 잡지 못했다"며 "이러한 공 경합 상태는 축구경기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도 통상 예상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1심 법원은 이어 "원고들은 이 사건 사고 당시 피고가 원고 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설령 피고가 공을 향해 달려가면서 멈추지 못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정상적인 공 경합 상태에서 공을 선점하기 위한 행동으로서 원고와 부딪힐 것이 명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수에게 골키퍼와 부딪힐 수도 있다는 추상적인 가능성을 생각해 공을 선점하기 위한 행동(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라는 것은 축구경기의 성질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충돌을 피하지 못한 것만으로는 피고의 행위가 경기규칙에 위반된다거나 위법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A씨 측은 항소했고, 재판은 2심에서 뒤집혔습니다. 2심 법원은 원고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심 법원은 "피고는 골키퍼가 수비하는 골대 위로 넘어가는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경우 골키퍼의 상황과 움직임에 유의해 골키퍼가 다치지 않도록 배려할 주의의무가 있다"면서 "그런데도 공을 잡기 위해 높이 점프하는 원고 쪽으로 빠른 속력으로 무모하게 달려가다가 점프 후 내려오는 원고와 세게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원고가 점프할 당시 이미 골대 부근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주장하나, 충돌 부위, 충격의 정도, 충격 후의 상황 등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건장한 체격(키 178㎝, 몸무게 100㎏ 이상)인 피고로서는 상대방 선수와 충돌 시 충격의 정도가 커질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2심 법원은 "격렬한 경기가 예상되는 대회나 시합이 아닌 동호회 회원들 사이의 친목을 위한 경기였다"면서 "위험구역 내에서 공격수가 상대 팀 골키퍼와 공의 경합을 넘어 조심성이 없거나 무모하게 신체 접촉으로 차징파울을 범해서는 안 되는데도 피고가 이를 위반해 원고에게 뛰어 덤벼드는 반칙을 범해 이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습니다.

단, 2심 법원은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20%로 제한해 4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습니다. A씨도 상대 선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음에도 이를 살피지 않은 채 골대 위로 넘어가는 공을 잡으려고 불필요하거나 무리한 점프를 시도해 충격의 강도가 더 커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했습니다.

결과는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습니다. 대법원은 "가해자의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 갑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데도,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전제로 한 판단은 잘못됐다"며 재판을 항소심 재판부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 동안 대법원은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경기자 등이 다칠 수도 있으므로, 경기규칙을 준수하면서 다른 경기자 등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신의칙상 주의의무인 안전배려의무가 있다고 봐 왔습니다. 다만 권투나 태권도 등과 같이 상대선수에 대한 가격이 주로 이루어지는 형태의 운동경기나 다수의 선수들이 한 영역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승부를 이끌어내는 축구나 농구와 같은 형태의 운동경기는 신체접촉에 수반되는 경기 자체에 내재된 부상 위험이 있고, 그 경기에 참가하는 자(이하 ‘경기 참가자’라 한다)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것으로 보아 왔는데요.

대법원은 이런 이러한 유형의 운동경기에 참가한 자가 앞서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는 해당 경기의 종류와 위험성, 당시 경기진행 상황, 관련 당사자들의 경기규칙의 준수 여부, 위반한 경기규칙이 있는 경우 그 규칙의 성질과 위반 정도, 부상의 부위와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되, 그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이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즉 가해자의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을 벗어난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원고가 공을 쳐내기 위해 왼쪽 후방으로 점프했으나 공에 닿지 못했고 그 순간 공이 원고의 머리 위를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공을 쫓아 움직이다가 착지 중이던 원고와 충돌한 것"이라며 "공의 궤적, 원고와 피고의 진행 방향, 충돌지점 등에 비추어 충돌 직전의 상황은 골키퍼와 공격수가 날아오는 공을 선점하기 위해 경합할 만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피고가 충돌지점까지 빠른 속력으로 달려가다가 충돌한 것이라고 해도 위와 같은 공 경합 상황이라면 피고는 공의 궤적을 쫓은 것이고 원고의 움직임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했더라도 충돌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이어 "원심이 ‘피고가 원고 쪽으로 빠른 속력으로 무모하게 달려갔다.’고 인정한 것이 공의 궤적과 상관없이 무작정 원고 쪽으로 돌진한 것이라는 의미라면, 위와 같은 충돌 상황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고의 친구로서 제1심에서 증언한 소외인의 증언 중 ‘피고는 공을 따라 간 것이고 반칙이라기보다는 무리한 플레이인 것 같다.’는 등의 증언내용과도 모순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상황 등에 비추어 피고가 원고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축구경기의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더라도 위반 정도가 무겁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격렬한 신체접촉이 수반되는 축구경기의 내재적 위험성, 골대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두고 공격수와 골키퍼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접촉의 일반적인 형태 등에 비추어도 피고의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 원고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 사건 사고로 원고가 중한 상해를 입었다는 사정은 위와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관련조문]

민법
제2조(신의성실) ①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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