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인 줄 알고 성관계...나라마다 성폭행 인정 여부 달라

캐나다·아일랜드 '행위의 중단 여부', 뉴욕은 '명시적으로 동의했는지 여부'가 쟁점…한국은 무죄 판결

최민경 기자 2019.06.18 16:05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A씨는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친구 B씨와 셋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후 남자친구와 A씨가 한 방에서 자는 상황에서 B씨는 방으로 들어와 A씨와 성관계를 시도했다. A씨는 처음에 B씨가 남자친구인 줄 알고 성관계에 응했다가 남자친구가 아닌 걸 알고 성폭행으로 신고했다.

A씨의 사례는 비동의 간음죄에 해당할까? 이에 대해 지난 12일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에서 열린 '여성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검찰의 대응방안' 학술 세미나에 참석한 한인검사협회(회장 엘리자베스 김) 소속 한인검사들이 각 국의 예상처분을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미국·캐나다·아일랜드 등 3개국의 검사들은 대체로 '행위의 중단 여부'를 기소 기준으로 꼽았다. 피해자쪽에서 성관계 도중 상대방이 남자친구가 아닌 것을 알고 멈춰달라고 요청했을 때 행위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준 정(June Chung) LA카운티 검찰청 검사는 "성관계 도중 남자친구가 아닌 걸 깨닫고 멈추길 요청했는데 행위를 지속했으면 기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쟁점은 여성이 상대를 착각한 것을 깨닫고 멈춰달라고 했을 때 멈출 수 있는지 여부다. 샌드라 맨테(Sandra Manthe) 아일랜드 더블린 검찰청 검사는 "아일랜드에서도 술 취한 여성을 강간하는 남성이 많아서 성폭력 퇴치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런 경우 보통 강간으로 기소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성관계시 단계별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 모든 단계에서 모든 행위에 동의를 받아야 강간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한 쪽이 거부했을 경우 강간이 성립한다. 이외에도 강간으로 기소시 두 사람의 전체적 관계와 구체적 상황을 고려한다. 장 세바스티안(Jean-Sébastian) 캐나다 퀘벡 주 검찰청 검사는 "사기·거짓에 의한 동의는 동의라고 볼 수 없다"며 "이 경우 상대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고, 기만에 의한 동의이기 때문에 기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 박(Jung Park) 뉴욕주 검찰청 검사는 "뉴욕에선 심신미약 상태나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남자친구인 줄 알고 섹스했다고 기소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동의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표면상 여성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박 검사의 설명이다.

사실 이 사건은 2011년 11월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준강간으로 판단해 기소했으나 2014년 4월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 1심을 판결한 서울서부지법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게 아니라며 남성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지만, 2심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착각하긴 했지만 상대 남성과 대화를 나누는 등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박은정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는 "한국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으면 강간으로 기소하긴 힘들고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일 경우에만 준강간으로 기소한다"며 "그마저도 과정 중에 폭행·협박이 없으면 법원에서 무죄 처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의 여부가 강간 처벌의 가장 중요한 지점인 미국·캐나다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무력의 사용 여부가 강간 처벌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12일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에서 열린 '여성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검찰의 대응방안' 한인검사 교류협력 프로그램 학술 세미나에 참석한 한인검사협회 검사들/사진=대검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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