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병 조롱에 투신…부모 손에 쥐어진 목숨값 800만원

"신체적 결함 모욕·조롱…자살 이르게 한 중요한 원인"…정신적 피해 근거한 위자료만 인정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6.27 06:00

지난 2017년 국군수도병원에서 투신해 숨진 병사의 부모가 욕설과 조롱을 가했던 가해 선임병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다. 1심 법원은 선임병들이 신체적 결함을 모욕하고 조롱한 행위가 병사를 자살에 이르게 만든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그러나 군이 지급한 유족위로금을 제하면 자살한 병사와 부모에게 재산상 손해가 없다며 위자료 1600만원만을 인정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16민사부(부장판사 김동진)는 국군수도병원에서 투신해 숨진 병사 A씨의 부모가 선임병들과 중대장, 대대장 등 군 간부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최근 '선임병 2명이 부모들에게 각 8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판결문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 2017년 4월 A는 육군 보병 제22사단에 배치돼 소총수로 복무했다. 22사단은 지난 2014년 GP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 부대다. A씨는 자대 배치 전 신병교육 도중 부상당해 윗 앞니가 빠졌고, 소속 부대로 배치된 이후 대화할 때 발음이 어눌한 모습을 보였다. 

부대 선임병인 정모씨 등은 A씨의 발음이 부상으로 어눌하다는 점을 트집잡아 'A의 강냉이(이빨을 속되게 이르는 말)도 강물에 떠내려간 것 아니냐' '폐급' 등으로 조롱하고, 폭행을 가했다. A씨는 자신이 선임병들로부터 당한 일들에 대한 메모를 수첩에 적었다. 메모엔 △선임병이 이빨이 빠졌음을 이유로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냐, 하나 더 뽑히면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며 이유없이 가한 조롱, 욕설 △부식을 받으러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혔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A씨는 선임병들의 괴롭힘을 받던 중 치과 진료를 위해 부친과 국군수도병원으로 이동해 진료를 마친 후 '놓고 온 물건이 있다'며 병원 7층으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선임병 2명은 폭행과 모욕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6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의 실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군은 A씨를 순직 처리하고 군인사망보상금 1억2400만원을 유족에게 지급했다.

이후 A씨의 부모는 부대 선임병들과 지휘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유족들은 "선임병들이 지속적인 폭행, 폭언, 욕설 등 가혹행위로 A씨 자살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고, 지휘관들은 A씨와 면담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알았으면서도 처벌하지 않고 선임병들과 분리하는 기본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임병들은 "A씨에게 한 말과 행동 정도론 가혹행위라고 볼 수 없고, 설령 다소의 욕설과 폭언을 했다 하더라도 A시가 자살하리라고 예견할 수 없어 인과관계도 없다"고 맞섰다.

지휘관들도 "면담 즉시 훈련에서 A씨를 열외시키고 전출조치를 결정했으며, 전출이 늦어지는 상황에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또 조치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A씨가 자발적으로 면담을 요청하고 처벌의사를 밝힌 점을 고려하면 자살이 예견되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가해행위가 A씨를 자살에 이르게 만든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선임병들이 A씨의 신체적 결함을 모욕하고 조롱한 행위로 A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모멸감과 자괴감이 악화돼 자살을 선택한 이상 선임병들의 귀책사유가 경과실이 아닌 이상, 함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법원은 "선임병들은 A씨의 이빨이 빠져 외모가 우스워지고 말투가 어눌해졌다는 사정을 알면서 이를 희화화하고 놀림감으로 이용하거나 모욕감을 주는 말과 행동으로 부상으로 위축된 A씨가 더 큰 자괴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육체적 고통이나 구타를 수반하는 가혹행위는 아니라도 A씨가 조롱이나 욕설이 지속되는 상황을 회피할 수 없는 폐쇄적 공간에서 선임병들과 함께 생활했으므로 그 정신적 고통이 가볍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법원은 그러나 선임병들의 책임은 15%로 제한했다. 법원은 "A씨가 처한 상황이 자살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중한 상황이라고 보긴 어렵고, 군대사회 내에서 오랜 기간 형성돼 온 욕설이나 폭언의 관행 역시 선임병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가해행동을 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나아가 법원은 유족이 받은 군 사망보상금을 손해액에서 공제하면 선임병들이 부모에게 지급할 재산상 손해배상액은 없고, 사망한 A씨의 위자료 1000만원, 부모에 대한 위자료 600만원 등 총 1600만원만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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