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친일 재산 중 찾은 건 땅 1평 남짓 (상보)

법원 "2010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친일 후손에 소유권…'4㎡'만 정부에 넘겨라"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6.26 16:06

정부가 되찾을 수 있었던 땅은 한평 남짓 이었다. 조선 왕족 출신 친일파 이해승이 유산으로 남긴 수백억대의 땅을 국가에 귀속시키겠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그 후손에게 낸 소송에서 또다시 패소했다. 후손의 땅 소유권을 전부 인정했던 1심 판결이 사실상 그대로 이어졌다.

이해승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1928년에는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1941년에는 자발적 황국신민화 운동을 위한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6일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김용빈)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또 이미 땅을 처분해 얻은 이익 3억5000여만원도 국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일부승소 판결이지만 내용은 사실상 패소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물려받은 땅 중 고작 4㎡의 소유권만을 국가에 넘기라고 판결했다.

앞서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하고 손자 이우영 회장이 상속받은 수백여개 필지를 친일재산으로 지목해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 필지들은 당시 시가 322억여원으로 친일파 168명에 대한 환수대상 땅 중 가장 넓고 비싼 땅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이같은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이 회장측 승소가 확정됐다. 이 회장이 당시 소송에서 땅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친일재산귀속법(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상 토지귀속 규정의 요건 덕택이었다. 개정 전 친일재산귀속법은 '한일병합에 공을 세워서 작위를 받았다는 등 사정이 인정된 자'의 재산을 귀속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행정소송의 쟁점은 이해승이 한일병합에 공을 세워 작위를 받은 것인지 여부였다. 이해승은 조선 25대 왕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으로 왕족의 신분이었고, 이 회장 측은 이해승이 한일병합에 관여한 것이 아니고 왕족이라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것이어서 재산 귀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같은 항변을 받아들였고, 국가에 귀속된 땅은 이 회장에게 다시 돌아갔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확정판결 이후 2011년 5월 친일재산귀속법을 개정했다. 한일병합에 공이 있는지를 불문하고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관여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된 이들에게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회는 또 부칙에 위원회가 법 개정 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한 자에 대해서는 법 개정 이후에 새로 정의된 '친일반민족행위자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즉 '한일병합에 공로가 있는 자'가 아니더라도 일제 식민지배에 적극 협력한 자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킬 수 있도록 이른바 소급효 규정을 둔 것이다.

정부는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해당 토지는 정부 소유라며 지난 2015년 이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땅 소유권이전등기를 정부에 넘기고 이미 처분한 토지를 판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법정에서 해당 토지는 이해승의 증조부 영평군이 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이거나 별도로 취득한 것이라며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맞섰다.

특히 이 회장측은 해당 토지가 개정 친일재산귀속법 부칙인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국가귀속결정을 했지만 2010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토지의 국가귀속결정이 취소된 이상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심 법원은 이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 전부패소 판결을 했다. 2심 법원 역시 확정판결로 국가에서 되찾은 토지에 대해선 친일재산귀속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 회장의 항변을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친일재산귀속법 부칙은 조항 본문에서 재판 계속중인 사건에 대해 개정 법률이 적용되도록 했지만 단서조항에서 국가귀속결정에 대한 쟁송을 전제로 판결이 확정된 경우 법적 안정성을 위해 개정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법원은 정부가 이 회장에게 이전을 청구한 토지들 가운데 이 회장이 대법원에서 2010년 확정판결로 되찾은 토지를 제외한 땅 4㎡만을 국가에 반환하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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