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정한 불륜" vs "진짜 불륜 아냐", 소송까지 간 이유는?

[황국상의 침소봉대] 장기이식법 등 '장기매매' 의심시 당국이 불승인, 장기매매 여부 확인 책임은 당국에

황국상 기자 2019.07.06 06:00

대개 불륜관계는 숨기고자 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법정에서 내연녀가 자신이 누군가와 불륜관계라는 점을 적극 주장해야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내연남에게 장기를 기증하려고 했지만 '장기매매'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당국이 장기기증을 승인하지 않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던 사건입니다.

A씨는 2012년 한 산악회에서 B씨를 만나 함께 활동하면서 불륜관계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2017년 B씨는 한 대학병원에서 신장질환이 악화돼 신장을 이식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게 됐습니다. A씨는 그해 내연남 B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주려고 했으나 이를 못하게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장기이식법(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장기를 기증하려는 사람이 본인·배우자의 가족에게 골수를 기증하려는 경우 이외에는 반드시 질병관리본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기이식법 시행규칙은 또 △신청서류가 거짓으로 작성되거나 △장기의 기증자 및 이식 대상자 사이의 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장기매매'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질병관리본부가 이식 대상자 선정을 반드시 승인해야 한다고도 규정합니다.

A씨는 B씨와 불륜관계에 있으니 B씨에게 신장을 이식하는 것을 승인해달라고 질병관리본부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장기이식법 시행규칙의 하위규정인 '살아있는 자의 장기기증 업무안내서' 규정을 근거로 A씨가 B씨에게 신장을 이식하는 것을 불허했습니다.

업무안내서 규정에 따라 '장기이식이 가능한 불륜관계'로 인정되려면 △사실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함께 거주하는 등 일상을 공유한다거나 △쌍방의 가정이 파탄이 나더라도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등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질병관리본부가 불허처분을 내린 이유였습니다. 이에 A씨는 질병관리본부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던 것입니다. 나아가 A씨가 B씨에게 신장을 이식하려는 것은 장기매매로 의심된다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A씨가 전부승소했고 이에 질병관리본부가 불복해 상소해 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결론적으로 1,2,3심 모두 A씨가 승소해 질병관리본부가 종전의 불허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친족관계가 아닌 타인에게 장기를 이식할 때 질병관리본부가 불허처분을 내서 소송까지 진행된 경우는 더 있습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도 교회에서 만난 지인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해주려던 C씨가 질병관리본부의 이식대상자 승인 불허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의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C씨 사건에서도 질병관리본부는 교회 지인 D씨에게 자신의 간을 자발적으로 이식해줄 정도로 C,D씨의 사이가 오래되거나 친했던 게 아니라는 이유로 불허처분을 내렸지만 재판부는 질병관리본부의 불허처분 근거가 미약하다며 C씨의 손을 들어줬던 것입니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질병관리본부가 상위 법의 위임에 의해 정해지지 않은 자체 규정으로 장기이식 대상자 선정의 승인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점이 법원에서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또 장기이식 대상자 승인신청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는 '장기매매 의심 정황'은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질병관리본부가 적극 증명해서 법정에서 입증해야 한다는 점도 A,B씨 사건과 C,D씨 사건에서 확인됐습니다.

A,B씨 사건에서 재판부는 "질병관리본부의 업무안내서 규정은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 질병관리본부의 처분이 적법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장기이식법과 그 시행규칙이 정한 기준이어야 한다"며 "질병관리본부는 자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허처분을 내렸을 뿐 A씨의 신장기증이 장기매매 등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하는 아무런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C,D씨 사건에서도 법원은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증명 책임은 원칙적으로 그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에 있다"며 "장기 이식 대상자 선정 승인을 거절한 데에 법규가 정한 거절사유가 있다는 점 역시 처분청이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규정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26조(이식대상자 선정 등)

①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은 제14조제3항에 따라 장기등기증자의 등록결과를 통보받으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기등 이식대상자의 선정기준에 따라 장기등이식대기자 중에서 이식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은 이를 장기등기증자 또는 이식대상자가 등록된 등록기관의 장에게 알려야 하고 등록기관의 장은 선정사실을 등록된 장기등기증자 또는 이식대상자와 그 가족ㆍ유족에게 즉시 알려야 한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안구의 경우와 이식대상자의 선정을 기다리면 이식 시기를 놓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이식의료기관의 장이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이식의료기관의 장은 선정한 사유 및 선정결과를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에게 알리고, 등록기관의 장ㆍ장기등기증자ㆍ이식대상자와 그 가족ㆍ유족에게 선정결과를 알려야 한다.
③ 제1항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제11조제4항에 따른 16세 이상의 장기등기증자와 20세 미만인 사람 중 골수를 기증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장기등의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본인 또는 배우자의 가족에게 골수를 기증하려는 경우 외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미리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④ 이식대상자 선정은 제2항 및 제3항과 제11조제4항에 해당되는 경우 외에는 제1항에 따라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이식대상자 선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3조(이식대상자 선정 승인)
① 법 제26조제3항에 따라 자신의 장기등을 이식받을 사람(이하 "이식대상자"라 한다)을 선정하기 위하여 승인을 받으려는 사람은 별지 제19호서식의 장기등 이식대상자 선정승인 신청서에 다음 각 호의 서류를 첨부하여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 별지 제20호서식의 장기등 이식대상자 선정 사유서
2. 장기등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②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은 제1항에 따라 제출된 서류에 적힌 내용의 사실 여부 등을 확인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식대상자 선정을 승인하여야 한다.
1. 제출된 서류가 거짓으로 작성된 경우
2. 장기등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아니하여 법 제7조에 따른 금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③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은 제2항에 따라 서류 내용의 사실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해당 장기등기증자 또는 이식대상자가 등록된 등록기관의 장으로부터 장기등기증자 또는 이식대상자에 관한 상담 내용 또는 의견을 제출받을 수 있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이식대상자 선정 승인 절차에 관한 세부 사항은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이 정하여 고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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