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판례씨] 최저임금제 회피를 위한 사측의 '꼼수'

대법 "외형상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효과 낳은 '소정근로시간' 단축합의는 무효".... 형사고의 '불인정'으로 최저임금법 위반죄는 '무죄'

황국상 기자 2019.07.09 06:00

이르면 이번 주중(7월8일~12일)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지만 노동계는 19.8% 오른 1만원을, 경영계는 되레 4% 삭감한 8000원을 각각 주장하고 있어 견해차가 크다.

편의상 최저임금을 시간당으로 표기하는 게 상식이 됐지만 최저임금법은 이를 굳이 시급이 아니더라도 일급·주급·월급 등 형태로 표기할 수도 있도록 했다. 어느 방식을 따르든 노동자가 받는 돈을 근로시간으로 나눴을 때 '1시간당 최저임금' 기준을 웃돌면 문제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2018년과 2019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고시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업계에서도 최저임금의 대폭 상승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다는 아우성이 나온지 한창이다.

때로는 이같은 압박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도 생긴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피해가려던 한 회사가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려고 했다가 민사소송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그 회사의 대표도 형사기소가 된 사건이 있었다. 외형상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낳은 노사간 '소정근로시간 단축' 합의의 유효성 여부 등을 다툰 대법원 판례(2019년 5월10일 선고, 대법원 2015도676 사건 및 2019년 4월18일 선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2016다2451 사건)를 소개한다.

택시 운송업체인 A사는 2007년부터 소정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 40시간, 월 209시간으로 정한 취업규칙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0년 7월과 10월에 걸쳐 A사는 두 차례의 취업규칙을 개정해 소정근로시간을 1일 4시간~6시간40분, 월 115~116시간으로 바꿨다. 종전 대비 최대 절반 가까이 소정근로시간이 줄어든 것이었다.

그러나 A사 근로자인 택시 운전기사들의 실제 근로시간은 종전 대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소정근로시간은 택시 기사들이 받는 '고정급'과 연계가 된다. 예컨대 같은 임금을 주더라도 소정근로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경우 근로자가 받는 '시간당 임금'은 2배로 오르는 착시효과가 생긴다.

이에 A사 근로자들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에 대해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결여돼 있어 무효"라며 회사를 상대로 기존에 지급받은 금액과 자신들이 정당하게 받았어야 할 최저임금 수준과의 차액을 지급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5명의 근로자들은 A사에 각각 171만~236만여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근로자들이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이들의 청구를 대부분 받아들였고 전원합의체로 진행된 대법원 3심에서도 이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근로자는 합의한 소정근로시간 동안 근로의무를 부담하고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한다. 사용자와 근로자는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소정근로시간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면서도 "소정근로시간의 결정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거나 노동관계 법령 등 강행법규를 잠탈(몰래 회피한다는 의미)하려는 의도로 소정근로시간을 결정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소정근로시간 합의의 효력을 부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A사의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은 무효이니 A사가 근로자들에게 미지급 임금을 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와 별도로 A사의 대표사원(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격)인 B씨는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도 받았다. 원심에서는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지만 대법원에서는 B씨의 무죄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이 나왔다.

원심 법원은 A사의 소정근로시간 변경에 대해 "최저임금법 개정 취지에 맞춰 최저임금에 미달하지 않도록 고정급의 비율을 실제로 높이지 않고 고정급 비율은 그대로 둔 채 실근로시간에 비해 현격하게 짧은 근로시간을 근로조건으로 정했다"며 "형식적·외형적으로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고 강행규정인 최저임금법을 잠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A사의 소정근로시간 변경이 무효라고 본 원심 판단은 옳다고 봤지만 B씨가 최저임금법 위반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달리했다. 고의가 없었으니 B씨의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A사는 소속 근로자 다수의 자발적 동의를 받아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순차적으로 변경했다. 이 결과 근로자들의 총 수입이 특별히 감소하지 않았고 고정급은 종전 취업규칙 당시와 비교할 때 다소 늘었다"며 "B씨로서는 근로자 다수의 동의를 얻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한 내용의 취업규칙이 유효하다고 보고 최저임금 차액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믿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B씨에 대한 형사사건은 원심법원으로 파기환송돼 다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관련규정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①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최저임금법
제2조((최저임금의 범위))

① 「최저임금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6조제4항제1호에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임금"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1. 연장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한 임금 및 연장·야간 또는 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2.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른 연차 유급휴가의 미사용수당
3. 유급으로 처리되는 휴일(「근로기준법」 제55조제1항에 따른 유급휴일은 제외한다)에 대한 임금
4. 그 밖에 명칭에 관계없이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규정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임금
② 법 제6조제4항제2호에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임금"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1.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에 걸친 해당 사유에 따라 산정하는 상여금, 장려가급, 능률수당 또는 근속수당
2.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의 출근성적에 따라 지급하는 정근수당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2. "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3.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
4.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
5.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
6. "평균임금"이란 이를 산정하여야 할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개월 동안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을 말한다. 근로자가 취업한 후 3개월 미만인 경우도 이에 준한다.
7.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
8. "소정(소정)근로시간"이란 제50조, 제69조 본문 또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6조에 따른 근로시간의 범위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정한 근로시간을 말한다.
9. "단시간근로자"란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그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 근로자의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
② 제1항제6호에 따라 산출된 금액이 그 근로자의 통상임금보다 적으면 그 통상임금액을 평균임금으로 한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근로기준법
제94조(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② 사용자는 제93조에 따라 취업규칙을 신고할 때에는 제1항의 의견을 적은 서면을 첨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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