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조현아 선고 뒤에도 법정에서 버틴 이유는?

기자 피한 모녀, 검찰 구형보다 무거운 형 택한 법원의 '이례적 선고' 이유 곱씹어 봐야

안채원 기자 2019.07.14 06:00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사진=뉴스1

"구형이 벌금형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벌금형은 (범죄의) 책임에 상응하는 형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존 공식을 깬 선고였다. 한진가 이명희·조현아 모녀의 이야기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는 출입국관리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량이었던 벌금형보다 더 무거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례적인 판결이다. 앞서 검사는 이 전 이사장에 벌금 3000만원을, 조 전 부사장에게 벌금 1500만원을 구형했다.

법원에서 재판부가 검사의 구형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구형량보다 조금 가벼운 형을 선고하거나 구형과 같은 형을 선고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체적으로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중간 위치에서 구형량을 감하는 감경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판사의 권한 중엔 작량감경(형법 53조)이라는 것도 있다.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 형을 감경하곤 했다.

가중처벌되는 경우는 대체로 죄를 또 짓는 누범(제 35조)이거나 상습범(형법 제203조), 죄의 교사와 방조하는 경우다. 또 반성의 뉘우침이 없을 경우에 '개전의 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거운 형량을 매긴다.

이토록 의외였던 재판부의 '작심 선고'에도 여론은 좋지 않았다. 집행유예가 벌금형보다도 더 엄한 징역형 처벌이지만, 국민의 법 감정에서는 결국 '감방'에서 살지 않고 풀려나는 게 처벌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번에 이 전 이사장 등이 저지른 죄는 출입국관리법 제18조(외국인 고용의 제한) 중 ①항 외국인이 대한민국에서 취업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위반한 것이다. 이 때 자격을 가지지 않은 외국인을 사용하는 경우 법 제94조(벌칙)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징역 3년 이하이면 집행유예를 할 수 있는 형량으로, 법원이 초범인 이들에게 집행유예를 내린 것이 약한 처벌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집행유예면 결국 풀려나는 게 아니냐', '이런 모녀를 풀려나게 하는 게 정의냐'와 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다.

국민 여론이 이토록 나빠진 이유는 한진가의 행실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에서부터 시작된 한진가의 일탈은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물컵 갑질', 이 전 이사장의 '폭언·폭행', 온 가족의 '밀수 혐의', 그리고 이번 '불법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 사건까지 이어졌다.

일이 터질 때마다 한진가는 '죄송하다', '반성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2014년 땅콩회항 사건으로 포토라인에 선 조 전 부사장은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푹 숙인 채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었다.

이번 사건 재판 내내 법정 안에서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5월 결심공판 당시, 조 전 부사장은 재판 진행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를 계속 읊조렸다. 미리 준비해 온 반성문을 암기하기 위함이었다. 조 전 부사장은 최후진술에서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저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직원들에게 송구스러울 따름이다"며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선고 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선고를 마친 뒤에도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이 법정에서 나오질 않았다. 질문을 하기 위해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은 10여분을 더 기다렸다. 법정에선 곧바로 다른 사건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빠르게 비워줘야 할 상황이었다. '대체 왜 나오질 않는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원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경위는 "(기자들이 있는) 법정 밖 상황이 정리가 되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난데없는 대치전이 벌어졌다. 기자들은 질문을 해야 한다며 법정 앞에서 버텼고,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나올 수 없다며 안에서 버텼다.

결국 떠밀리듯 나온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그야말로 앞만 보고 걸었다.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에도 멈칫하는 기색 없이 빠르게 직진했다.

조 전 부사장의 신발이 벗겨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날 기자들은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에게 '벌금형 대신 징역형이 나왔는데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냐', '심경 한 말씀 전해달라' 등의 질문을 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들이 진심으로 직원들과 국민에게 송구함을 느꼈다면 죄송하다거나 반성한다는 사죄의 말을 전해야 하지 않았을까? 법정 버티기처럼 그냥 버티고 지나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재판부도 이날 판결선고에서 "한진그룹 총수의 배우자·자녀라는 지위를 이용해 가족 소유의 기업인 것처럼 여겼다"면서 "하지만 진정한 뉘우침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살만한 변명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원이 구형보다 센 '작심 선고'를 내린 이유를,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정말 알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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