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공동체의 가치 잊지 않아야"…김칠준·오세범 변호사는

삼성 LCD 산재 인정 판결부터 세월호 참사 법률지원까지…서로의 길 격려한 '동반자'

안채원 기자 2019.07.19 06:00
김칠준 대표변호사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김칠준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다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인권 변호사'다. 김 대표변호사는 모든 인간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확고한 가치관 아래 삶을 살아왔다. 그는 자신이 인권 변호사로 불리는 것에 대해 "사실 변호사는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인권 변호사라고 할 수 있다"면서 "나는 단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난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공안 사건이 많이 발생함에도 이를 도와줄 변호사는 거의 전무했던 수원에 터를 잡았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위 '힘없고 인맥 없는' 자들을 위해 힘썼다. 노동 인권 변호사로서 수많은 노동 사건과 억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건을 맡았다.

김 대표변호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였다. 한 사람이 '꿈에서 저 사람을 봤다'는 이유로 김종경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화성경찰서 측은 이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내사 종결했지만, 이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제보를 받고 김씨를 연행, 7주간 인권침해 수사를 했다. 김 대표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받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김 대표변호사의 이름도 함께 알려지게 됐다.

김 대표변호사는 삼성 LCD(액정표시장치) 근로자 산재 인정 판결을 끌어내기도 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삼성전자 LCD 공장 근로자를 대리해 2017년 8월 대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이 판결은 산재 소송에서 회사도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충분히 협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연구 결과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라도 업무와의 인과성을 전향적으로 인정할 수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김 대표변호사가 이처럼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목표를 같이하는 동반자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다산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오세범 변호사다.

오세범 변호사
오 변호사와 김 대표변호사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 변호사는 한 제약회사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 쫓겨난 해고노동자였다. 오 변호사는 복직 소송 과정에서 김 대표변호사를 알게 됐고, 김 대표변호사의 권유로 그의 변호사 사무소에 상담실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오세범 변호사는 '최고령 사법고시 합격자'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2011년, 늦깎이 고시생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사법고시 합격증을 품에 안았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오세범 변호사의 이력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건 단연 세월호다. 오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법률상담지원단의 중앙지원팀장을 맡았다. 유가족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하고 다른 변호사들과 릴레이 단식을 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에 뛰어들게 된 것은 그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 변호사는 "그저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하게 된 일이었다"며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 공동체의 문제라고 여겨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오 변호사에게 공동체에 대한 일상적 관심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그는 "작은 마을의 단위에서부터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야 큰 참사도 미리 막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 "공동 문제에 무관심하다가 일이 터져 그때 수습하려고 하면 굉장히 늦는다"고 지적했다. 그런 생각으로 오 변호사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동 회장이 됐다. 동 회장이 되고 나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한 달에 한 번 누구라도 동 회장을 찾아와 커피를 마시는 '커피 타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파트 문제에 대해 모든 주민이 모여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오 변호사는 "앞으로도 우리 이웃 간의 문제, 공동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서 "모두가 서로에게 공감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문제와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에 같이 몸을 맡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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