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로 향하는 한·일 통상분쟁…"일 최혜국대우 원칙 위반했다"

한국 GATT 협정상 '최혜국대우' 원칙 등 2가지 vs 일본 전략무기 제한 위한 4대 협정이 무기

황국상 기자 2019.07.25 16:27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관련 발표를 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성 장관은 이날 "오늘 아침 산업부는 지난 7월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입법예고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 의견서를 제출했다"면서 "한국의 수출통제 제도 미흡, 양국간 신뢰관계 훼손 등 일본 측이 내세우는 수출규제 조치의 사유는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뉴스1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교역절차 간소화 우대절차 대상국) 제외조치의 부당성을 가리기 위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절차가 임박했다. 한·일 양국의 정치적 영향력 여부가 아니라 국제법 법리를 중심으로 전개될 이번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려 있다.

국내 대형로펌의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한국 측은 올들어 일본이 취한 일련의 조치가 WTO가 보장하려고 하는 글로벌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적극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일본을 WTO에 제소할 경우 WTO는 일본의 조치가 자유무역 원칙을 규정한 국제법 조항을 위배했는지를 검토하게 된다.

이번 사안처럼 국가간 또는 일방 국가와 다른 국적의 기업·개인 등의 분쟁을 규율하는 기준은 국제법이다. 양자간 또는 다자간 체결한 조약·협정 등이 모두 국제법으로 불린다. 모든 나라가 헌법을 기준으로 정체(政體, 국가의 통치체제)의 뼈대를 갖춘 후 개별 법을 통해 민사·형사 등의 사안을 규율하는 것과 달리 국제법은 이같은 조약·협정의 조항 하나하나가 당사자들에게 '무기' 또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이번 한·일 통상분쟁의 핵심 조약이 바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이다. 194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23개국이 체결한 이 협약은 1995년 WTO 출범 이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무역을 관할하는 대표적인 다자간 조약이었다. 여러 차례의 개정 등을 통해 이 협정은 1995년 출범한 WTO로 흡수돼 여전히 글로벌 무역분쟁에 대한 주요 판단기준으로 영향을 갖고 있다.

WTO 체제는 현재 164개국이 가입돼 있고 한국과 일본 역시 가입국이다. WTO 체제를 유지하는 틀은 △WTO 체제의 출범을 규정한 마라케시 합의를 비롯해 △글로벌 다자간 무역을 규율하는 일반 원칙인 1994년 버전의 GATT △농업, 위생 및 검역, 기술장벽, 무역관련 투자수단, 반덤핑 협약, 원산지 규정, 무역제재 및 무역촉진 등 개개 사항에 대한 조약 △지적재산권, 민간 항공기 교역, 정부조달 등에 대한 개개 협약 등이다. 이들 모두가 가입국에 영향을 주는 법조항으로 기능하는 '국제법'이다. 당연히 GATT는 한국과 일본에도 적용이 된다.

GATT의 제1조와 제11조 등 2개 조항은 한국 측이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조항으로 꼽힌다. 제1조는 '최혜국대우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A,B,C,D국이 WTO에 가입한 상황에서 A국은 B국에만 유리한 교역조건을 부과하고 C,D국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부과할 수 없다. C,D국에도 B국과 같은 수준의 '유리한 조건'을 부과해야 한다는 게 GATT 1조의 최혜국대우 원칙이다.

일본이 한국에만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가 이에 해당한다는 점을 우리 정부는 적극 피력할 전망이다. 아울러 제11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수출입 등 교역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우리 측은 일본이 취했거나 취할 예정인 2가지 무역제재 조치가 GATT 1조와 11조를 위반했다는 점을 적극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특정 요건 하에 글로벌 전략물자의 교역을 제한하는 '바세나르 협약' 등 4개 국제협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6년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의 정식 명칭은 '이중 사용(Dual Use) 품목 및 일반 전략물자 수출에 관한 협정'이다. 말 그대로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물자의 교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바세나르 협약을 비롯해 생화학무기, 원자력 기술, 미사일 기술 등과 관련한 물자의 교역을 제한하는 글로벌 협약을 일컬어 '전략물자 제한 4대 협정'이라고도 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 4대 협정에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국내법에서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민법 등 일반법보다도 개개의 특별법이 우위에 있듯, 이들 무기통제 협약들은 통상조약보다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물론이고 일본의 경제산업성 등 정부부처들이 입을 모아서 "한국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는 '안보상 정당한 이유'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전략물자 제한협정에 따른 것일 뿐 WTO 원칙이나 GATT 조항에 위반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일련의 통상규제를 개시한 초기만 하더라도 '강제징용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최근에는 그 빈도를 확 줄인 것도 이같은 전략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WTO 분쟁해결 절차에서 당사국의 정치적 영향력 여부보다 국제법 법리를 중심으로 한 싸움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이 다소 우위에 설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미국이 당사자인 사건에서 WTO가 미국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면서도 "이번처럼 한·일 양국이 당사자인 경우에는 정치력 여부보다 국제법 법리를 중심으로 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WTO 절차는 적어도 2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WTO 이사국들이 어느 쪽 주장을 더 신뢰할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GATT 원칙과 무기통제 협정은 한·일 통상분쟁을 WTO에서만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나 쓰일 뿐이다. 이미 한·일 양국은 이번 통상규제의 부당성 여부에 대해 주요 외교 채널을 통해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일본 통상규제 해제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같은 외교적 노력의 일환이다. 장외에서 급속도로 갈등이 해소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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