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응답하라 2011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9.07.29 06:00

"법무부 장관은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반드시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그것은 곧 법치국가의 기본 틀을 흔드는 일이 될 것."

마치 자유한국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내정설을 두고 낸 논평 같지만, 이 논평을 낸 건 야당이 아니다. 최근 나온 얘기도 아니다. 꼭 8년 전인 지난 2011년 7월, 총선을 한 해 앞두고 권재진 민정수석이 이명박 정부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야당인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내놓은 성명이다.

당시 민주당은 "권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기 때문에 다음해 선거에서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 자리에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정수석을 기용한 최악의 측근 인사"라며 맹렬히 비판했다.

반대로 여당인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황우여 원내대표는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 독립성을 가져야 할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에 기용되는 것은 곤란하지만 정부 부처 장관까지는 괜찮다는 게 의원총회에서 나타난 의원 다수의 의견"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끝까지 권 후보자 임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도 결국 불발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 2009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은 결국 2011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62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지금은 상황이 꼭 정반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7월 말이나 8월 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최근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조 전 수석을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후임으로 검토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당시 민주당과 같은 이유에서 반대 성명을 낸 상태다.

이번 정권이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앉히려는 데 명분은 있다. 박상기 현 법무장관에 이어 조 수석이 문재인 정부 2기 법무부 장관을 맡아 정부 최대 개혁과제인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박 장관 아래서도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 나름대로의 성과는 있었지만, 검찰 내부적인 개혁이 아직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조 전 수석의 인사검증에 착수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조 전 수석이 법무부장관 직에 오르게 될지는 불확실하나, 재미있게도 문 대통령은 이미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행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이미 밝힌 적이 있다. '사람이 적합하면' 문제가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8년 전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문 대통령은 지난 2011년 7월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제 아래서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은 대통령의 행정권을 보좌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청와대 수석을 하면 장관이 되지 않는다는 단순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도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온 분이라면 자격에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권위주의 시절처럼 검찰을 법무참모 부리듯 해서 참여정부 때 보장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후퇴됐다"라며 "권 수석은 그 문제에 가장 책임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에 법무장관이 되기에 부적합하다"라고 부연했다. 이 당시의 논리대로라면 민정수석을 했다고 법무부장관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인물이 부적합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바꿔말하면, 사람만 괜찮다면 민정수석에서 법무부장관으로 직행한다 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정자로서는 할 수 있는 발상이다. 또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직행시키는 것 역시 실제로 검찰개혁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두 번째'가 되면 관행이 된다. 이 정권이 아니라 어떤 다른 정권이라도 외관상 대통령의 최측근이 법무부로 직행한다면 수사기관으로서의 검찰을 통제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정권의 도덕성을 믿어달라는 태도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만약 정권이 바뀐 후 선거에 개입하려 하는 등의 특정한 의도를 품고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직행시킨다면 그땐 무엇을 대어 비판할 것인가. 이를 넘어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직행하는 경로가 앞으로 굳어진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으로 남을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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