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리]프듀X 팬들의 검찰 '덕질'…"주임검사님 취미는 음악감상"

담당검사 프로필 공유하며 검찰 수사 관심…검찰, 직접 수사 대신 수사 지휘

하세린 기자 2019.08.10 06:00

"내일(6일)부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X부의 신임 부장검사로 발령되는 ○○ 부장검사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신임 부장검사님께서는 이번에 저희 사건을 가장 먼저 담당하실 것으로 판단되기에, 더욱 사명감 있게 진상을 규명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000명 가까운 수의 한 '단톡방(단체 채팅방)'에 한 검사의 신상명세가 떴다. 생년월일과 가족관계, 출신학교부터 수상경력까지 뜨자 곧바로 '수사 능력'에 대한 품평이 이어졌다.

A: 그러니까 ○○○ 주임검사님이 실질적인 업무를 하는 거고 이 검사님은 '걍' 부장검사라는거??
B: ㅇㅇ. '걍' 부장검사가 아니라, 아래 부부장검사와 평검사를 지휘하는 등과 동시에 사건의 총 책임자.
('걍'=그냥)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관계자들 조사를 담당하는 주임검사에 대한 신상명세는 이미 한참 전에 공유됐다. 이 단톡방 멤버들은 주임검사가 반부패업무 유공으로 검찰총장 표창을 받은 우수한 검사라며 수사에 잔뜩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심지어 취미가 음악감상이란 점에서 이번 사건과 운명을 예감하기도 했다. 

검찰의 인사 시즌이 겹쳐 담당 부장검사와 주임검사가 변경되기도 했는데 이 정보 또한 순식간에 올라와 공유됐다. 검사에 대해 다소 과도하리만큼 관심과 애정(?)을 갖고 수사를 응원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 단톡방은 CJ ENM 채널 엠넷(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의 투표조작 의혹을 제기한 일부 팬들이 만든 공간이다. '국민프로듀스'가 탄생시키는 아이돌그룹의 취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이들이 모인 이유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연습생을 응원하는 데 그치지않고 '프로듀스X101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변호사를 선임한 후 제작진을 검찰에 고발하는 데 이르렀다.

한발 더 나아가 담당 검사를 알아내 이들에게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알리고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검찰 수사를 압박해나갔다. 진상규명위는 주임 검사에게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며 "끝까지 사건의 진상을 발본색원해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듀X 팬들이 담당 검사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것들이 무색하게 이번 사건은 검찰이 아닌 경찰이 수사하게 됐다. 이미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엠넷에 대해 내사에 들어가 CJ ENM 내 제작진 사무실과 문자투표 데이터 보관업체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검찰은 고발이 들어오면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를 검토하게 되지만 사건의 성격에 따라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낸 후 수사 지휘를 할 수 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를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여나가도록 큰 방향이 잡힌 상황이다. 검찰 역시 이미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직접 수사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실제 검찰 내에서도 청년들의 '공정경쟁'과 연관되는 점에서 프듀X의 투표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편이었다. 프듀X팬들이 담당 검사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응원하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듀스X101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8일 사건 담당검사에게 보낸 진정서. /사진=프로듀스X101 진상규명위원회 디씨인사이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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