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소수의견이 다수 됐듯 어느 한쪽이 100%인 판결은 안돼"

[피플]제 50회 법률문화상 수상한 목영준 김앤장 사회공헌위원장

김태은 기자 2019.08.29 15:00
목영준 김앤장 사회공헌위원장(전 재판관)/이기범 기자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목영준(사법연수원 10기)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이 올해 50회를 맞은 한국법률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목 위원장은 30일 머니투데이 더엘(theL)과의 인터뷰에서 "이 상이 생긴 이래 가장 평범한 사람이 받게 된 것 같다"면서 겸손해했다. 

한국법률문화상은 법조실무나 법률학 연구를 통해 인권옹호, 법률문화의 향상, 법률문화교류 등에 공로가 있는 법조인 및 법학자에게 주어지는 국내 법조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1969년 처음 상이 만들어진 이래 당대 내로라하는 법학자들이나 굵직한 이슈를 주도한 법조인들이 이 상을 받았다.
2010년 북한법 연구의 대가 장명봉 국민대 교수나 2014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던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목 위원장의 수상이 남다른 이유가 있다. 1983년 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6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자리에 올라 인권과 개인의 존엄을 우선하는 진보적 판결로 법원과 시민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법원을 떠난 후엔 '전관 변호사' 타이틀 대신 사회공헌활동에 뛰어들어 법조인의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목 위원장은 "2010년 열린법원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공익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헌재 재판관을 그만둔 후 김앤장과 사회공헌위원회를 같이 운영해볼 기회가 생겨서 열심히 하게 됐다"면서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줄 수 있는 기회를 늘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는 2013년 5월 문을 연 후 공익 사건 위주로 무료 변론과 컨설팅 등을 해주고 중고등학교와 이주민 등의 법률교육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형로펌의 장점을 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있는 공익활동을 펼쳐나가자 다른 로펌에도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목 위원장은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들이 퇴직 후 로펌 사회공헌위원회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제가 모델이 됐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올해 목 위원장에겐 수상 외에도 의미있는 일이 두 가지 더 있었다. 중재 분야에서 유일한 기본서로 평가받는 '상사중재법'을 제자와 공저로 재발간한 일이다. 목 위원장은 국내에서 용어조차 생소했던 1977년부터 국제중재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수많은 논문 발표 등을 통해 중재법 분야의 선구자이자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목 위원장은 "사법시험에 비교적 일찍 합격한 편이라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때까지 남는 시간에 교수님을 도와드리게 됐다"며 "그때 중재 관련 글쓰기를 돕게 되면서 중재 관련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유학을 가서도 중재에 관해 계속 공부를 하게 됐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문가가 돼서 이리저리 불려다니게 됐다"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중재 강의를 맡게 돼 강의록으로 만든 것을 수정보완한 게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자와 함께 쓰게 된 책이 제자의 제자, 또 그 제자 이렇게 계속 이어지게 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상 낙태죄가 7년 만에 위헌 판정이 난 것 역시 목 위원장에겐 감회가 남달랐다. 7년 전 비록 낙태죄를 뒤집진 못했지만 "일정 시점까지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반대의견을 낸 4인 중 한명이 목 위원장이었다. 


목 위원장은 "개인의 인권과 존엄, 자기결정권을 공동체의 선보다 우선시하는 게 진보의 가치"라며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진보적 가치에 방점을 두고 판결을 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진보나 보수나 어느 한쪽이 100%여선 안된다. 특히 최고 재판소에서는 언제나 소수 의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소수 의견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질 때 다수 의견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7년 전 그의 소수 의견이 오늘날 다수 의견이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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