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벌초 전기톱 살인미수 사건' 부른 '분묘기지권' 논란

2001년 1월 13일 이전 설치돼 20년 넘은 분묘에 한해 '분묘기지권' 인정..내 땅에 가족묘써도 장사법에 따라 신고해야

유동주 기자 2019.09.13 14:01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으로 벌초를 하기 위한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2013.9.8 / 사진=뉴스1


지난 8월 말 제주에선 일명 '벌초 전기톱 사건'이 있었다. 고조할머니 분묘 주변에 나무가 쌓여 있는 걸 항의하던 벌초객 가족과 시비가 붙은 A(61)씨가 창고에 보관하던 전기톱을 들고 나와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벌초객 가족 중 B(42)씨는 오른쪽 다리 좌골 신경과 근육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경찰이 살인미수 혐의로 송치했고 검찰은 살인의 고의성은 없다고 봐 특수상해로 지난 5일 A씨를 구속기소했다.

B씨 가족 조상묘가 A씨가 세입자로 거주하는 주택 내 마당에 있는 관계로 다툼이 시작됐다. B씨 고조할머니 분묘는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20년 넘은 묘였다.  

이 사건은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전기톱사건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로 올라와 이목을 끌었다.  

사고를 당한 B씨의 누나라고 밝힌 청원인은 "60년도 넘은 고조할머니 산소 옆에 3년 전쯤 가해자 가족이 이사를 왔다"며 "가해자 가족이 면사무소에 '무연고 산소 신고'를 해놨다는 소식을 들었고 산소가 보이지 않게 산소 주변에 나뭇가지를 덮어놨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20년 넘은 분묘에 대한 관습상 '분묘기지권' 2017년 재확인 

지난 2017년 1월 대법원(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김용덕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분묘설치자들을  대상으로 땅주인이 제기한 분묘철거 관련 상고 신청을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2013다17292)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본인 소유 임야에 있는 6기의 분묘를 관리해 왔던 이들을 상대로 땅주인은 분묘 철거·이장을 청구했다. 분묘기지권 존속여부를 두고 이 판결에 이목이 집중됐었고, 2016년 9월22일 대법원 공개 변론까지 열렸다. 
최종적으로 당시 대법원이 땅주인의 청구를 기각함에 따라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은 계속 인정되고 있다. 법령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20년간 있던 분묘를 관리해왔다면, 묘를 수호하는 범위 내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인 '분묘기지권'은 대법원 판례에 의해 관습적으로 인정돼 왔다.
분묘기지권은 민법상 다른 사람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인 '지상권(地上權)'과 유사한 것으로 본다. 판례에선 ‘지상권 유사의 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불합리한 관습으로 분쟁의 씨앗 vs. 조상 섬기는 윤리지키기 위한 보호책

제주 벌초 전기톱 사건처럼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묘가 남의 집 마당에 있는 경우는 분쟁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땅주인의 재산권 보호가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에선 남의 땅에 무단으로 설치한 묘가 20년 이상 지나면 계속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둔갑한다는 관습법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분묘기지권 시효취득 논리는 땅주인의 재산권 행사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토지의 한계 및 장례문화의 변경(화장·수목장 등)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때 과거 관습법으로 인정하던 현재의 대법원 판례는 재검토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오랜 기간 존속한 조상 분묘의 안정성과 선조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는 재산권에 견줄 수 없다는 이유로 분묘기지권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상 섬기는 전통이 소유권에 앞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2001년 1월 13일 시행 장사법, 분묘기지권 인정 안 해

2001년 1월13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은 신설된 묘지에 대해 분묘기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정된 장사법 시행 이전에 설치된 묘지로 20년의 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만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 

따라서 만약 자신의 소유 토지에서 2001년 이전 설치된 남의 분묘를 뒤늦게 발견한 경우에는 20년의 시효완성이 되기 전에 해당 분묘의 관계자를 찾아 시효를 중단시켜야 한다.

분묘기지권을 내세워 이장에 반대하거나 이장비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은 부동산 시장에서 그간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상당수 분묘기지권은 소위 '알박기'처럼 작용되기도 한다. 일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안에 분묘가 그대로 보존돼 주거공간과 묘지가 공존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해당 분묘에 권리가 있는 후손들과 아파트 건설주체와 협의가 안 된 채 사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봉분이 없던 땅에 갑자기 봉분이 조성되고 그 밑에 수십년 조상이 매장돼 있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분묘기지권 주장을 못하도록 봉분을 전문적으로 없애는 작업을 하는 이들을 땅주인이 고용하는 일도 있다.

장지현 변호사(법률플랫폼 머니백)는 "개정 장사법 시행 이전 시효완성된 분묘기지권에 대해선 땅주인이 분묘의 이장이나 토지 사용료를 청구할 수도 없어 논란이 돼 왔다"며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사회·문화적 기초가 여전히 중시되고 2001년 이후 새 분묘에 대해선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아 향후 분쟁사례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장 변호사는 "특별한 다른 사정이나 사례가 사건화 돼 대법원에 상고되지 않는다면 관습법으로서 분묘기지권을 재확인한 201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판단 변경은 어려울 것"이라 덧붙였다. 

제주도지사 선거 당시 문대림 후보 측이 제공한 원희룡 지사 가문 납골묘 현황도/사진=뉴스1


◇내 땅에 개인 조상묘도 지자체 신고절차 거쳐야

지난해 제주도지사 선거에선 유력 후보들간에 조상묘 불법조성의혹을 두고 공방이 있었다. 원희룡 지사 부친이 설치했던 가문 납골묘와 문대림 후보의 모친 묘지가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성된 게 폭로됐다. 결국 두 건 모두 '이전명령'이 내려졌다. 

원 지사 가문 납골묘의 경우엔, 지난 2016년 6월 서귀포 색달동에 있는 타인 소유의 임야에 조성된 조상묘를 개장한 후 봉안시설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당 조상묘는 분묘기지권에 따라 관리된 곳이었다. 따라서 이를 납골묘로 조성하면서 개장하면 분묘기지권이 상실될 수 있어 행정절차를 거쳐야 했다.

문대림 후보는 가족 소유 토지에 모친의 묘지를 조성하면서 사설묘지 설치 신고를 하지 않았다. 장사법에 따라 자신 소유 토지에 개인 묘지를 조성하더라도 지자체장 등에게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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