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판결문 살펴보니…

1994년 처제 강간·살해 혐의로 교도소 수감 중…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안채원 기자 2019.09.19 14:37
'화성 연쇄살인 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사진=뉴스1

"피고인은 내성적이나 한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의 성격 소유자로 자신의 아들도 방 안에 가두고 마구 때려 멍들게 하는 등 학대하고, 부인에 대해서도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한다는 이유로 재떨이를 집어 던지며 손과 발로 무차별 구타하기도 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꼽히고 있는 이모씨의 '처제 강간·살인 사건' 2심 판결문 내용이다. 재판부는 증거 조사 등을 통해 이씨의 성향을 이처럼 파악했다. 이씨는 1994년 1월, 당시 스무살이던 자신의 처제 A씨를 강간한 뒤 살해했다. 

이씨가 처제에게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아내 때문이었다. 이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내가 두번째로 가출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앙심을 품었다. 그러던 중 처제인 A씨에게 "토스트기를 주겠으니 집에 들러 가져가라"는 전화를 했고 A씨는 그날 저녁 이씨 집에 방문한다. 

이씨는 A씨에게 수면제가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했다. 이후 잠에서 깨어난 A씨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인지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씨를 원망하자 A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집 안에 있던 망치류의 둔기로 A씨의 뒷머리를 4회 내리쳐 실신시킨 후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사체를 집에서 약 880m 떨어진 곳까지 운반해 유기했다. 사체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과 비슷하게 여자 스타킹 등으로 꽁꽁 묶여져있거나 싸여져 있었다.

이씨의 폭력적 성향은 평소에도 아내에게 두려움을 줬다. 갈등을 겪던 아내가 첫 번째로 가출했다 귀가한 다음 날엔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주먹으로 아내의 얼굴, 목, 아랫배 등을 마구 때려 하혈까지 하게 했다. 또 자신의 동서에게 "아내와 이혼을 하겠지만 쉽게 이혼하지는 않겠다"며 "다른 남자와 다시는 결혼하지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는 협박을 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미리 계획을 해놓은 듯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씨는 당시 아내에게 "내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고 말하곤 아내가 '가족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말라'고 부탁하자 "상관 말라"고 답했다.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나는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사실이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1심의 양형은 너무 과해 부당하다'면서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증거로 인정되는 사실과 이씨의 범행 전후 행적, 진술 허구성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범행을 이씨가 범했다고 인정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범행은 평소 피고인을 믿고 따르던 처제를 강간·살해한 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한 반인륜적 범죄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계획적이고도 치밀하게 이뤄졌다"면서 "이씨는 범행에 대해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엿보이지 않는다"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판단을 바꿨다. 대법원은 이씨의 성폭행 범행은 계획된 것이 맞지만 살인은 우발적이었을 수도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강간 범행은 이씨가 미리 수면제를 음료수에 타서 먹여 피해자를 강간할 마음을 먹고 계획적이고도 치밀하게 저지른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겠지만, 그 후에 있던 살인 범행에 대해서는 기록을 자세히 살펴봐도 이씨가 피해자를 살해할 것까지 사전에 계획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직접적인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오히려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울면서 피고인을 원망하자 강간 범행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가출한 부인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살해할 것을 마음먹고 범행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어 우발범행인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당초 수면제를 먹였다는 점만으로 살인 범행까지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이는 양형을 정함에 있어 고려돼야 할 주요한 조건 중 하나"라며 "의문점을 해소하지 않은 채 범행 모두를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저질렀다고 봐 극형에 처한 것은 심히 부당한 결과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처제를 강간·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유기한 것은 반인륜적 범죄임에 틀림없고, 그 범행방법 또한 잔인한 면이 없지 않으나 존엄하기 비할 바 없는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형을 선택·처단할 것인가 여부는 그 양형조건에 관해 충분한 심리를 한 다음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면서 감형 취지로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이후 대전고등법원은 대법원의 취지대로 사형은 너무 무겁다고 판단, 이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하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행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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