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로펌 박차고 나온 '법조계 아웃사이더'… "법률번역 시장 선도"

법률번역 기업 베링리걸 문성현 대표 인터뷰

하세린 기자 2019.09.27 06:00
지난 24일 서울 중구 위워크 사무실에서 만난 문성현 베링리걸 대표. /사진=하세린 기자

"다들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또 잘 될 것이라고도 예상했지만 '로펌 변호사 타이틀'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아 시작을 못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남들과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 법조계 아웃사이더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대형 로펌을 박차고 나와 법률번역 시장에 뛰어든 이가 있다. 법률번역 전문기업 문성현 베링리걸 대표(34)의 얘기다.

베링리걸은 문 대표를 비롯해 국내외 명문 로스쿨 및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와 패러리걸(paralegal,로펌에서 변호사의 사무업무를 돕는 직업군) 전문가들로 구성된 법률번역 전문기업이다. 기존 번역 회사들이 법률 전문성이 떨어지면서 저가 출혈경쟁을 하고 있었다면, 베링리걸은 변호사와 패럴리걸들이 대형 로펌 대비 20~30% 비용으로 법률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위워크'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는 2010년 여름 한국의 한 대형 로펌에서 인턴을 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 60여명의 인턴들이 함께 근무했는데, 주 업무가 법률 번역이었어요. 두달 내내 정말 많은 양의 법률문서를 번역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자유롭고 법률 지식도 있다보니 저희가 하는 번역의 퀄리티가 꽤 높았어요. 어느 날 오후에 저희끼리 차 한잔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번역을 잘 하는데 회사를 차리면 대박이 나겠다'는 얘기를 농담삼아 했던 게 창업의 계기가 됐죠."

이에 문 대표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친구와 함께 법률전문 서비스 법인 아이비포스를 세웠다. 당초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프리랜서들이 법률 번역을 하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 자격증은 땄지만 로펌보다는 더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원하거나 육아휴직 등으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영입했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위워크 사무실에서 만난 문성현 베링리걸 대표. /사진=하세린 기자

그러나 문 대표는 주요 고객인 대형 로펌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더 각별한 기밀유지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 지난 4월 정규직 변호사와 패럴리걸 7명으로 구성된 베링리걸을 새로 출범했다. 국내 변호사 2명, 미국 변호사 3명, 베테랑 법률번역 패럴리걸 2명이 팀이다.

현재 베링리걸의 전문가 인력 풀은 변호사 170여명을 비롯해 금융·의학·IT 등 각 분야의 전문가 500여명으로 성장했다. 애플, 디즈니, 루이비통, 포스코, CJ E&M 등 400여개의 국내외 대기업과 로펌들이 고객이다. 베링리걸은 계약서와 서면(소송 중에 각 변호인이 작성하는 의견서), 판결문 등 모든 종류의 법률번역 서비스를 연중무휴로 제공한다. 한달에 진행하는 법률번역은 200~300건으로, 올해 매출 20여억원이 예상된다.

그러나 고객들이 베링리걸 서비스를 선호하는 건 무엇보다 저비용으로 국내 대형 로펌 수준의 뛰어난 법률번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전문가 집단이 주축이 된 아이비포스 비용은 대형 로펌 대비 20%, 로펌 출신의 변호사와 패럴리걸들이 직접 번역하는 베링리걸은 25~30% 수준이다.

이같은 비용구조를 갖출 수 있는 건 재택출근 등으로 임대료 등 고정비용 부담이 적어서다. 직원들은 탄력근무제를 통해 일주일에 20시간만 회사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자택 등 원하는 장소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한달간 해외근무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절반 정도의 비용을 회사가 지원한다. 현재도 2명의 변호사가 각각 미국과 캐나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또 대형 로펌과 같이 여러 단계의 검수를 거치지 않는 점도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변호사들이 초벌 번역에 스스로 검수까지 빠르게 할 수 있는 구조여서 고객사에 비용을 덜 청구해도 직원들에게는 대형 로펌 수준의 연봉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 대표는 올해 AI(인공지능)를 활용한 특허 자동번역기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고, 앞으로 법률 자동번역기 시장까지 선도하겠다는 포부다. AI 기술이 법률시장까지 지배하는 때가 되면 영업력과 검수력이 관건이 될 텐데, 베링리걸은 지난 7년간 이러한 전문인력 풀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링리걸에서 베링은 베링해협을 뜻해요. 동아시아와 미주 대륙을 연결하는 베링해협처럼 미국과 한중일 간 비스니스에 수반하는 법률번역 비용을 최소화해 좀 더 원활한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 AI 기술까지 접목해서 법률번역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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