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과세에 대한 단상(斷想)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박정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9.10.09 07:10
서울 종로구 경운동 종로세무서 2013.3.7/뉴스1


공평과세는 조세부담이 국민에게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과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로 논의되고 있다. 여러 이해관계자나 단체들이 각양각색의 과세제도, 입법 등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한결같이 공평과세를 내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주장하는 공평과세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다른 경우도 많고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공평과세란 어떤 의미인지, 공평과세의 기준은 무엇인지, 공평과세를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관하여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공평과세는 원칙적으로 응능(應能)과세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응능과세란 소득, 재산, 부(富)와 같은 납세능력 내지 담세력에 따라 과세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평과세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변화, 발전하여 온 역사적 산물이지 선험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에 누구나 같은 세금을 내는 것이 공평과세라는 생각이 있었다.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누구라도, 그리고 똑같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두세(人頭稅, tax per head)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과하는 조세는 소득, 재산 등의 담세력을 묻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담세력이 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는 가혹하여 조세저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 인두세로 평가되는 조선시대의 군포는 백성들의 민란, 조세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에서는 1380년에 부과된 인두세가 1381년 농민반란의 주된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담세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똑같은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과세제도는 공평과세의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받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 부분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으로 주민세 개인분이 여기에 해당하고,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도 넓게 보면 같은 생각을 기반으로 한 과세로 평가할 수 있다.

근세 초기에 이르러 공평과세는 응익(應益)과세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대두하였다. 응익과세란 납세자가 공공부문에서 받는 이익 또는 편익(benefit)에 따라 하는 과세를 말한다. 이러한 생각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점이 있지만 공평과세는 응능(應益)과세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더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소득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한 세금이 대부분 응능과세에 따르고 있기는 하나, 지방세 등 응익과세를 기반으로 하는 과세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역사적으로 볼 때 공평과세의 개념에 대해서는 누구나 같은 세금을 내는 것에서부터 응익과세를 거쳐 응능과세가 널리 지지를 받기에 이르렀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과세제도에는 여전히 여러 요소의 과세가 혼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공평과세의 개념이 응능과세로 완전히 귀결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이 공평과세의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근본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응능과세는 공평과세를 위해서는 납세능력 내지 담세력에 따라 과세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터잡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납세능력이나 담세력을 어떻게 파악할지, 납세능력이나 담세력에 따른 과세 차등의 정도를 얼마나 둘지 등에 관하여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득, 재산 등 담세력이 있는 사람이 현재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거나 ‘현재보다 누진율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이른바 ‘부자증세’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주장도 적지 않다.

다른 측면에서 납세의식 제고와 조세정의를 위해서는 근로소득자 중 면세점 이하의 소득자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고 있다. 우리나라 조세부담이 유달리 특정 계층에 집중되어 있어 국민개세주의에 반하고, 특히 근로소득자 중 약 40%가 면세점 이하의 소득자로서 세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으므로 조세 형평성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납세능력 내지 담세력이 적은 사람들 상당수가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공평과세에 반한다’는 주장인 셈인데, 일반적인 공평과세나 응능과세의 논의와 어떻게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부와 과세관청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하여 장기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다.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세원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하고 세무조사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거나 조세포탈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소득, 재산 등을 숨겨 세금을 탈루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와 같은 사실이 적발되었을 때에는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평과세 실현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근래에 대법원은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 등을 강조하면서, 세무조사에 절차적 위법이 있는 경우에는 설령 과세처분의 실체적 내용 자체에 문제가 없더라도 그 과세처분은 위법하다고 하면서 과세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잇따라 선고하고 있다. 또한 조세사건의 형사사건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 우리나라 조세범 처벌 규정의 법정형은 외국의 입법례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중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공평과세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그 수단이 적법, 적정해야 하고, 과세에 있어 고려할 원칙에는 공평과세 외에 다른 것들도 존재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평(公平)’의 사전적인 의미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공평은 가치판단의 문제로서 시대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파악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구체적인 과세제도나 과세 내용이 공평한지는, 한편으로는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공개된 장에서 가치의 공유와 합리적 토론을 통하여 판단할 일이다. 이러한 작업 없이 이해관계자들 각자가 자신이 제시하는 과세제도나 입법 방안만이 공평과세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면, 공평과세는 구실일 뿐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다른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박정수 변호사
박정수 변호사는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변호사로 주요 업무분야는 조세·관세 및 행정소송 등이다. 사법연수원 제27기 수료 후, 2001년 대전지법 판사로 시작해 인천지법, 서울북부지법을 거쳐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쳤고 2011년 대법원 조세공동연구관실에서 재판연구원으로 활동해 조세분야에서 정통한 전문 법관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창원지법 부장판사 겸 연구법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했고 현재 화우 조세쟁송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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