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칼럼]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김만배 부국장 2019.10.11 10:04
'평범하게 사는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50대 중반을 넘기면서 동의하는 삶의 한 정의다. 

일 년 넘게 소식이 없던 지인으로부터 최근 반가운 휴대폰 문자가 왔다.

'뜻이 통하는 분들과 로펌을 만들어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는 내용과 함께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대표적인 서사시 '비파행(琵琶行)'을 첨부했다. 

한 해 전에 그에게 백거이의 장편시 '중은(中隱)'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화답인 모양이다.

사실 법원을 떠날 때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삶의 새로운 길을 찾은 것 같아 다행이다. 백거이의 한시를 읽으면서 분노하고 좌절한 삶이 위로받기를 바랐다.

아마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격해, 시인이 '중은(中隱)'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평범한 삶이 주는 지혜'였던 것 같다. 

시인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백거이(白居易) 선생의 이름은 중용(中庸) 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 라는 말에서 따왔다.

거이(居易)는 거할 거(居) 자에 평범할 이(易)인데,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字) 낙천(樂天)은 주역(周易) 계사(繫辭)의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따왔다. 

백거이(白居易), 백낙천(白樂天)으로 불리는 이름과 자(字)처럼,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시인은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중은(中隱)의 지혜를 배우고 싶으면 한 번 읽기를 권한다.


중은(中隱)-백거이

-제대로 된 은자는 조정과 저자에 있고
-은자입네 하는 이들 산야로 들어가지만
-산야는 고요하나 쓸쓸하기 짝이 없고
-조정과 저자는 너무나 소란스럽네
-그 둘 모두 한직에 있는 것만 못하니
-중은이란 일 없는 직에 머무르는 것이라
-출사한 것 같으면서 은거한 것 같고
-바쁜 것도 그렇다고 한가한 것도 아니라네
-몸과 마음 힘들어 할 까닭도 없고 
-추위와 주림도 면할 수가 있으며
-한 해가 다 가도록 해야 할 일 없지만
-달 따라 녹봉은 꼬박꼬박 나온다네
-그대 만약 노닐기를 좋아한다면
-성 동쪽에 봄마다 풍경 좋은 곳이 있고
-그대 만약 술이라도 생각나는 날이면
-때때로 술자리 손님이 될 수도 있으며
-낙양에는 군자입네 하는 이들 많으니
-한 데 섞여 온갖 말 다 전할 수 있네
-그대가 만약 편히 누워 조용히 지내고 싶으면
-다른 것 말고 대문만 닫아두면 될 테니
-찾아오는 귀한 손님 있을 리 없고
-대문 앞이 소란하고 바쁠 일도 없네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면서
-두 가지 모두 보전키가 쉽지 않으니
-천해지면 추위와 배고픔을 겪게 되고
-귀해지면 걱정과 환란 그치지 않네
-오직 하나 힘이 없는 관리가 되면
-그 몸이 복 되고 편안해질 테니
-막힌 것과 터진 것 넉넉함과 모자람 
-그 네 가지 사이에서 살게 되리라

김만배 머니투데이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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