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법관 워라밸' 딜레마

불꺼진 밤풍경…만성 인력부족에 젊은 판사들 인식변화…사건처리 지연 우려

이미호 기자 2019.11.12 05:39
법조출입 기자들에게 익숙한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불이 꺼질 줄 모르는 서초동의 밤 풍경이다. 대검찰청이 있는 반포대로부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을 잇는 서초대로까지 그야말로 24시간 불야성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말 밤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검찰청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지만(물론 '조국 수사'라는 굵직한 이슈가 있다), 법원은 당직실만 빼고 나머지는 꺼져 있을 때가 잦다. 판사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가져온 '낯선 풍경'이다.

이 낯선 풍경을 두고 의견은 완전히 반대로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판사들이 사건처리 건수를 의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야근으로 이어진다"며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오려면 적정한 근무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쪽에서는 "재판 절차가 지연되면 피해를 보는건 결국 국민"이라고 우려한다.

얼마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전관(前官) A씨도 최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며칠 전 볼일이 있어 주말 밤에 서초동 사무실에 들렸는데, 법원 불이 거의 꺼져 있었다는 것. 

A 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밤을 새서라도 재판기일에 맞춰 어떻게든 했었다. (재판을) 연기하는 것도 굉장히 창피하게 생각하고 그랬다"면서 "물론 워라밸도 중요하긴 하지만 법조인은 더 큰 가치를 생각해야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저 전관출신이 '우리땐 안그랬다'며 늘어놓는 단순한 훈수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실제로 법원의 사건처리 기간은 길어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형사사건 1심 단독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3년 100.4일에서 2018년 125일로, 민사 1심 단독 평균 처리 기간은 같은 기간 158.5일에서 204.3로 껑충 뛰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구성되면 판사들이 한주에 판결문을 몇개 쓸껀지, 주심판사 1명당 몇개 쓸껀지, 점심은 언제 같이 먹을지, 저녁은 각자 먹자든지를 결정하는 '룰 미팅'부터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 52시간 근무 추세에 맞춰 법관들도 과도한 업무량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건처리 기간이 길어지면 재판 당사자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변화하는 법관들의 인식까지 보태지면서 또 다른 서초동 밤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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