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36.5] 법무부 vs 검찰, 낭(狼)과 패(狽)

배성준 부장 2019.11.19 06:00
대부분의 인간은 견고한 무언가를 깨고 부수기보다는 ‘지킴’에 의한 집단적인 질서를 택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대를 막론하고 패러다임의 파괴자는 당시의 상황과 운에 따라 혁명가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기존의 진리를 뒤엎는 반역자가 되기도 했다. 지동설을 지지했던 갈릴레오는 평생 이단심문에 시달렸고 19세기 원자론을 전개했던 볼츠만은 에너지론자의 공격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패러다임의 파괴로 몸살을 앓는 기관이 있다. 검찰이다. 지난 10월 대검찰청과 법무부는 잇따라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다. 두 기관은 특별수사부 축소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내놓았고 이후로도 10여 차례에 걸쳐 파격적인 방안을 쏟아냈다. 이쯤 되면 가히 이례적이라 평가할만하다. 

개혁안에는 별건수사금지, 수사 장기화제한, 변호인의 변론권 강화 등이 포함됐다. 인권보호라는 시대적 소명을 놓고 볼 때 상당히 의미 있는 발전방안이라 평가된다. 그럼에도 법무부와 검찰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국민과 인권이란 단어를 방패삼아 두 기관이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외치는 개혁의 방안이 ‘국민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와 처절한 고민 아래 마련된 것일까’하는 의구심 말이다.

법무부는 검찰청을 지휘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법무부가 개별적인 사건이나 수사에 개입할 수는 없다. 검찰청법 8조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감독한다고 돼 있다. 법무부의 수사지휘권을 이처럼 제한한 이유는 수사의 독립성을 위해서다.

두 기관은 상·하위 기관으로 구분돼 있지만 실상은 법무와 수사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봐야한다. 밀접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해야 할 법무부와 검찰청의 관계는 그러나 더는 밀월이 아니다.

지난 박상기 법무장관 시절 검찰개혁 법안 마련 과정에서 검찰 패싱 문제가 불거졌고 이를 두고 당시 문무일 총장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법무부와 검찰의 파열음이 나왔다. 조국 전 장관의 수사를 놓고 두 기관의 균열은 더 커졌다. 조 전 장관의 퇴임으로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다시 ‘타다’ 수사를 놓고 신경전이 촉발됐고 최근 검찰의 41개 직접수사부서 폐지와 검찰수사 법무부 사전보고 규정을 놓고는 감정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낭패를 보았다’는 말이 있다. 이때 나오는 ‘낭(狼)’과 ‘패(狽)’는 모두 전설상의 동물로, 낭은 날 때부터 뒷다리가 아주 짧았고 패는 반대로 앞다리가 매우 짧았다. 그래서 낭과 패가 걸을 때면 패가 늘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치고 둘이 합쳐야만 걸을 수 있었다. 

반면 낭과 패가 서로 고집을 부리며 틀어지면 둘은 걸을 수도 사냥할 수도 없어 꼼짝없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근거로 어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때 쓰는 말이 됐다. 법무부와 검찰이 힘겨루기를 하면 낭패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양측의 대립은 사실상 주도권 경쟁, 감정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국민들은 어느 기관이 상위인지 누가 더 많은 개혁안을 쏟아냈는지에 관심이 없다. 제대로 시행될지도 모를 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보며 힘 있는 기관들의 과도한 신경전으로 느낄 뿐이다.

개혁의 물줄기를 탔다면, ‘뭔가 그럴듯해 보임’과 ‘가려짐’, ‘감싸기’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앞의 세 방향으로 가면 국민이 원하는 개혁의 목적지에 가 닿을 수 없다. 국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그보다 앞서 자신들의 우선순위에 국민이란 두 글자가 있는지 법무부와 검찰은 깊이 들여다보길 바란다. 

배성준 부장(사회부 법조팀장) / 사진제공=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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