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생활비 안 주고 말도 안하는 남편과 한 집에 삽니다
[조혜정의 가정상담소]
조혜정 변호사
2020.02.09 08:53
이지혜 디자인기자
Q) 현재의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상의 드리고 싶어요. 남편과 저는 한 집에 살면서 5년간 말을 안 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남편이 엄연히 직장에 다니는데도 저한테 생활비를 전혀 안 준다는 거에요. 10살, 8살짜리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그래요. 아이들 둘 키우려면 학비, 학원비, 식비, 도우미 아줌마 비용까지 생활비가 정말 많이 듭니다. 남편은 한 집에 사니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5년째 모른 채 하고 생활비는 제가 다 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들 아빠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정말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생활비를 달라고 하면 5년 전 부부싸움하다가 남편이 저를 때리고 목을 졸랐던 사건이 다시 일어날까봐 무서워서 생활비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5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저와 남편이 원래 이렇게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캠퍼스 커플로 만나 오랫동안 연애하고 결혼해서 결혼 초기 몇 년은 사이좋게 잘 지냈는데, 남편이 직장에서 갑자기 퇴사를 당한 후부터 부부 사이가 삐걱대기 시작했어요. 그 후 남편은 다시 취직을 했지만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어요. 반대로 저는 회사에서 인정받으면서 승진을 거듭하니까 남편이 의기소침해지면서 저와 얘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안타까워서 남편에게 이것 저것 조언을 했는데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 같아 저도 서서히 말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5년 전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폭발해서 집안 물건을 부수고 저를 때리고 목을 졸랐습니다. 그 광경을 아이들이 다 보았고요. 그 때부터 저와 남편은 말을 안 하고 남편은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와 남편은 상대방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유령인 양 취급하고 서로 피해다니면서 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거실에서 아이들과 티비를 보고 있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 가버려요. 빨래는 알아서 하고 식사는 대체로 밖에서 해결하거나 저 안 보는 곳에서 혼자 먹곤 합니다. 물론 지난 5년간 같이 밥 먹은 적도 없고요. 주말에는 둘 중 한 쪽이 집에 있으면 다른 쪽이 밖에 나갑니다.
저도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문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쫙 끼치고 1년쯤 전부터는 갑자기 심장이 조여오면서 숨이 안 쉬어지는 증세가 나타났어요. 제 월급만 가지고 두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 아줌마 비용이 감당이 안되니까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 마이너스가 5000만원 가까이 되고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계속 살고 있는 건 제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힘들었기 때문에 저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는다고 굳게 결심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도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만약 제가 이혼을 결정할 경우 5년간 생활비를 안 준 남편에게도 재산을 절반 줘야 하나요? 저희 부부의 재산은 제 명의로 작은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담보대출을 제외하면 4억원 정도 됩니다. 이 아파트를 정리해서 반씩 나누면 2억원인데 여기서 마이너스 통장 5000만원을 빼면 1억5000만원 밖에 안 남아요. 이걸 가지고 두 아이와 어떻게 살아야할지 너무 막막하네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 살다가는 제가 숨막혀 죽을 것 같아요.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가요?
이지혜 디자인기자
A) 혼자서 생계와 두 아이 키우는 짐을 다 떠안고 사시려면 얼마나 힘드실까요? 저한테 상담오시는 여자분들 중에서 가장 지친 분들이 바로 선생님 같은 분들이거든요. 다들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한 분들이라 남들한테는 절대 말 안 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혼자 감당하다가 쓰러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해결책을 찾아오시더라고요.
선생님처럼 배우자와 한 집에 살지만 감정적인 교류는 거의 완전히 끊긴 분들을 저는 ‘감정적 이혼’상태에 있다고 부릅니다. 감정적 이혼상태에서는 이혼해야 되나 말아야 하는 마음의 갈등과 배우자에 대한 분노, 원망이 항상 존재하지요. 한 시도 마음 편할 때가 없고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나서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대체로 우울증과 불안, 공황장애 등 뭔가 정신의 균형이 무너지는 징후가 발생합니다. 심장이 조여오면서 숨이 안 쉬어진다는 선생님의 증세도 아마 이런 상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일 거예요.
5년간 이런 상황에서 버텨오셨다면 보나마나 선생님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일 터이니 더 이상 이런 상황을 계속 유지하시긴 무리입니다. 생활비가 모자라서 빚을 5000만원이나 졌다면 재정적으로도 이미 빨간 불이 들어왔네요.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리고 상황을 정리하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버틴다는 건 올바른 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이 나쁜 부모들과 같이 사는 아이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두 분이 아무리 노력해서 아이들 앞에서 티를 안 내려고 해도 집안 분위기가 계속 냉랭하고 긴장감이 흐를테니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아이들도 너무 힘들 거예요. 오랜 시간 지속되면 아이들에게도 심리적, 정신적 위기가 나타날 수 있어요. 성인이 된 아들 딸과 같이 이혼상담 온 엄마들이 ‘너희들 때문에 이혼 안 하고 버텼다’고 하면 아들 딸들이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이혼을 안 해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냐’고 원망하는 경우도 가끔 보거든요. 선생님 남편이 말은 안 하더라도 생활비라도 준다면 참고 살아보시라고 하겠지만 5년간이나 생활비를 안 준다면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봐야겠죠.
상황을 정리하는 첫 단계로 남편과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남편이 말을 안 하고 생활비를 안 주는 이유를 물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를 해야죠. 그동안의 감정이 쌓여서 대화가 안되고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마지막으로 남편과 화해가 가능한지를 점검해보는 건 필요합니다. 남편도 선생님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만약, 선생님이 대화를 청했는데 남편이 묵살하거나 대화거부 혹은 대화 도중 싸움이 일어난다면 더 이상 화해의 여지는 없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지속하지 마시고 정리를 하셔야 합니다. 만약,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이혼이 정말 꺼려진다면 최소한 별거라도 하시길 권합니다. 별거하게 되면 남편을 안 봐도 되니까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많이 줄어들고 숨쉴만하게 되거든요.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지난 5년간 남편이 지급하지 않은 아이들의 과거 양육비를 한꺼번에 청구할 수 있다는 걸 알아두세요. 요즘 양육비가 대개 1인당 50만원은 되니까 두 아이 한 달 양육비를 월 100만원으로 잡으면 지난 5년간의 과거양육비는 최소 6000만원 정도는 될 거에요. 그리고, 선생님의 마이너스 통장 대출 5000만원은 생활비에 쓴 돈이기 때문에 이혼 재산분할 할 때 남편에게도 그 채무를 분담하라고 요구하거나, 그동안 선생님의 부담한 생활비를 고려해서 선생님의 재산분할 기여도를 1/2보다 높여서 정하도록 할 거예요.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보통의 기준인 1/2 분할보다는 상당히 많은 금액을 재산분할로 받을 수 있고, 남편에게 양육비 청구도 할 수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금액은 못 되니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만만치 않으실 거에요. 그래도 어차피 생활비 못 받는데 감정적 이혼상태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짓눌려 사는 현재 상태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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