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간섭' 부장판사 1심 무죄 "범죄 아니지만 위헌적"

(종합) '직권 없이 남용 없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성립 안 한다는 판단했지만 "지위 이용한 불법행위"

김종훈 기자 2020.02.14 11:45
임성근 부장판사./ 사진=뉴스1


법원행정처 지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훼손 사건 등 재판 진행에 간섭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56·사법연수원 17기)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간섭은 분명한 잘못이지만 범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1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2014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사건 재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경찰과 마찰을 빚어 기소된 사건 재판 판결문 작성에 간섭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에 따라 이뤄진 범죄라고 주장했다.

2014년 당시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정윤회씨를 만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기사로 실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임 부장판사는 이때 담당 재판장을 시켜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만 무죄 이유가 있어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적게 한 혐의를 받았다.

원래 판결문은 '대통령은 최고의 공적 존재이기 때문에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임 부장판사가 청와대 반응을 염두에 주고 판결문을 수정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었다.

민변 사건에서 임 부장판사는 변호사들과 다툰 경찰관도 잘못이 있다는 내용을 빼고, 변호사들의 잘못을 부각하는 쪽으로 판결문을 다시 쓰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외에 야구선수 임창용·오승환씨의 도박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한다는 담당 판사의 결정을 바꿔 약식재판으로 끝내게 한 혐의도 있었다.

재판부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임 부장판사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재판 간섭은 임 부장판사가 맡고 있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직권에 속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공식을 따른다. 공무원이 직권 밖에서 벌인 일이라면 다른 변수와 무관하게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직권에 속하는 일이라고 쳐도 임 부장판사가 시켜서가 아니라, 담당 재판장들이 재판부 합의에 따라 독자적으로 결정을 바꾸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범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첫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위임·지시를 받아 사법행정 사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재판에 관여할 권한을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임 부장판사에게 위임·지시·명령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둘째 이유에 대해서는 "(임 부장판사가 관여한 사건의) 담당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법적 판단 및 합의부 논의를 거쳐 독립적으로 판단했다"며 "임 부장판사의 요청과 담당 부장판사 및 소속 재판부의 재판업무 사이 인과관계가 단절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죄는 아니지만 임 부장판사의 행위는 분명한 잘못이라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지위 또는 개인 친분을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판결 후 임 부장판사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확정 판결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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