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초동살롱]붉어진 얼굴, 떨리는 목소리…추미애가 민망했던 진짜 이유

김태은 기자 2020.03.08 07:00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법무부 장관이 검사인가, 검찰총장인가? 압수수색을 왜 장관이 지시하느냐?"

"왜 나대느냐"는 거친 표현 쯤에 기가 죽을 '추다르크'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얼굴이 연신 붉어졌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지도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필요성을 지시한 법무부 장관의 지시가 월권이란 야당 국회의원들의 신랄한 비판에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시가 아닌 일반적 지시였다"고 해명하는 목소리는 자주 떨렸다.

심지어 "장관이 지시를 내렸으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안하느냐"는 비아냥성 질의가 나왔을 때조차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란 사자후를 토하는 대신 한참을 할 말을 찾지 못해 대답을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검찰청법 8조에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 사건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검찰총장과 권한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법무부의 외청이면서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법률로 보장하는 취지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무엇보다 강조해온 추 장관에게 검찰 수사의 독립성 침해란 비판이 과연 아플런 지는 모를 일이다.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줄곧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주창하던 그의 요지는 한마디로 '기소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수사권까지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아예 분리하는 법률 개정을 논의하겠다며 전국 검사장 회의까지 소집했던 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워낙 급박하다고는 하나 손, 발이 잘리고 몸통마저도 내줄 날만 기다리게 된 '검찰 수사'가 갑자기 코로나19 앞에선 칼춤을 추라고 요구를 받는 상황은 '선택적 수사'도 아닌 '선택적 검찰개혁'인지 어리둥절하다. 직접 총대를 매고 검찰에게 신속하게 압수수색에 나서야 한다고 지시를 내려야 하는 추 장관의 처지는 법무부 장관의 월권 문제를 넘어 조변석개의 민망함을 떨치기 힘들어보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미래통합당 주호영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추 장관은 이날 신천지 지도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시한 이유에 대해 "국민의 86% 이상이 요구하고 있다"며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우기도 했다. 다수의 국민이 요구하고 있으니 법무부 장관의 지시 논란이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였다.

신천지 교단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추 장관 뿐만은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해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이 상당 부분 신천지 교단에 있다고 생각하는 여론으로부터 이들의 행보가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추 장관이 정치인인 동시에 법무부 장관이란 점이다. 법무부 장관에겐 무엇보다 법치의 가치 실현이 중요한 임무다.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강제수사를 법령이 아닌 여론조사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발상에 민망함을 넘어 놀라움을 표하는 반응이 많았다. 법무부 장관의 지위를 망각한 발언이란 지적에서다.

검찰의 한 간부는 "그동안 검찰개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인권보호고 특히 영장 발부의 세세한 범위 등 강제수사의 요건을 법률에서 엄격하게 제한하며 이를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에 방점을 둬왔다"면서 "정치인으로선 할 수 있는 말일지 몰라도 법무부 장관으로선 적절한 발언같진 않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추 장관이 스스로 민망함을 토로한 대목이 있었다. 최근 '소년범 세배' 논란을 일으켰던 법무부TV의 홍보영상물이 자료로 제시되면서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홍보 내용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며 "법무부냐, 아첨부냐"며 "추미애 대권후보 만들기냐"고 추 장관을 몰아세웠고 추 장관은 "듣기 민망하다. 그만하라"며 벌개진 얼굴로 홍보영상을 외면해 버렸다.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을 받아들인 배경에 대해 대권 가도를 향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란 추측이 정치권에서 나돌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개혁 임무를 이어받아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를 성공시킨 후 서울시장과 차기 대선 등의 '꽃길'을 걸을 것이란 시나리오였다. 취임 후 검찰 인사와 직제개편, 공소장 비공개 등을 밀어붙인 배경 역시 이러한 '정치적 야심'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추 장관을 향해 "민주당의 '엑스맨'"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일등공신"이란 비판도 이날 날아들었다. 이런 비판이야 정치공세로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추 장관을 난감하고 민망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거듭되는 신뢰의 상실이다. 그것도 본인만이 아닌 현 정부 평가와 연계해서 말이다.

"추미애를 신뢰하느냐, 윤석열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은 선거를 앞두고 이번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심을 가늠해볼 수 있는 꽤 정확한 측정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모 정치컨설턴트이 귀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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