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단 말에 속아 재혼, 알고보니 다 '거짓말'…저 어떡하죠?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조혜정 변호사 2020.03.14 05:23

이지혜 디자인기자


Q) 제 나이 올해로 63세인데, 이 나이에 사기결혼을 당해서 상담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1년 전 재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이혼을 안 한 상태인데다 의처증까지 있네요.


제 나이 마흔 여섯 되던 해에 전 남편과 이혼을 하고 그 후부터는 식당일, 파출부, 청소일을 하면서 혼자서 살았습니다. 전 남편은 결혼 초부터 술만 마시면 돌변해서 욕하고 때리고 살림을 때려부쉈거든요. 걸핏하면 일 그만두고 생활비도 별로 안 줬고요. 아이가 다 크면 이혼한다고 마음에 새기고 살았지요. 아들이 커서 군대를 갈 무렵 그만큼 키웠으면 내 할 도리는 한 것 같아서 미련 없이 집을 나왔습니다.

괴롭히는 남편이 없이 혼자 사니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은 편하더라고요. 쭉 그렇게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기운이 떨어지고 여기 저기 아픈 데도 생겨서 먹고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노후에 어찌 살아야 하나 답답하던 차에 제가 다니던 교회의 집사님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10여년 전에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사는 남자인데 신앙심 좋고 재산도 있다더라고요. 만나보니 저를 마음에 들어하면서 같이 살아주면 조금 후에 혼인신고하고 제 노후를 책임져준다고 했습니다. 노후를 책임져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제 살림을 정리해서 남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10개월이 지나도 혼인신고를 안 해주고 자꾸 미뤄서 캐고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아이들 엄마와 서류정리가 안 되어있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10여년 전에 집 나와서 따로 살고 있는 건 맞지만 이혼은 아직 안 했다는 거예요. 저를 감쪽같이 속인 거였어요. 저는 남자가 혼인신고를 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같이 살기 시작한 거지, 만약 이혼 안했다는 걸 알았으면 절대 같이 살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지금이라도 이혼을 하라고 하니까 애엄마가 이혼을 안 해준다네요. 제가 빨리 이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해달라고 했지만 이 남자는 이혼할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 이혼하면 재산분할을 해줘야 하니 그게 아까운 거지요. 이혼을 안 할 거라면 내 노후를 책임진다는 약속이라도 지켜라, 나 살 수 있게 전세보증금이라도 해달라고 했지만 이 남자는 지금까지 못 들은 체 하고 있어요. 노후보장해준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같이 살아보니 이 남자가 의처증이 있는데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제가 혼자 밖에 나갔다 오면 누굴 만나고 왔냐고 의심하면서 전화를 수십 통씩 해대고 갖은 욕을 퍼부어요. 얼마 전부터는 현관문에 자물통을 달아서 채우고 그 열쇠를 자기가 보관하고 있어서 이 남자가 열어주지 않으면 저는 밖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아래층 사람이랑 바람을 피우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헛소리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 마디씩 해서 그냥 넘겼는데 갈수록 헛소리하는 횟수가 많아지네요. 동네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몇 년 전에도 다른 여자랑 살았는데 그 여자한테도 그래서 그 여자가 얼마 못 버티고 집을 나갔다네요. 

이 남자랑 같이 살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무서운데, 돈이 없어서 집을 못 나가고 있어요. 알아보니 사실혼 관계라고 하더라도 헤어지게 되면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가 된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남자한테 속아서 농락당한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합니다.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저를 속인 데 대한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A) 선생님, 정말 안타깝네요. 살림 합치기 전에 그 남자의 혼인관계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셨어야 했어요. 혼인관계증명서 한 번만 보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결혼하기 전 상대방이 법적인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공적인 장부를 통해서 확인하는 절차가 꼭 필요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지요. 상대방을 못 믿는 것 같아서 증명서 보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가 봐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인생의 중대사니까 확인할 건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신 것이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선생님처럼 배우자가 이혼이 안 된 상태에서 같이 산 것이라면 사실혼에게 인정되는 법률적인 보호를 받기가 상당히 어렵거든요.

사실혼이더라도 법률혼과 똑같이 사실혼 관계가 끝날 경우에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가 인정되는 게 원칙이예요. 하지만, 선생님 경우와 같이 사실혼 당사자 중 한 명이 법률상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중혼(重婚)적 사실혼’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사실혼과는 다르게 취급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온 판결들을 살펴보면 중혼적 사실혼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실혼 관계 해소에 따른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선생님 경우처럼 사실혼 당사자의 별거기간이 긴 경우에도 역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가 인정이 안되고요. 이혼남이라는 남자의 거짓말에 속아서 중혼적 사실혼이 되어버린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한 얘기지요.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고 유부남이 이혼했다고 속이고 동거를 하자고 한 점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서 민사상 위자료 청구소송을 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위자료 청구소송을 한다고 해도 위자료 액수가 많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이혼사건의 경우 20년 정도 살아도 위자료 3000만원 넘기기가 어려우니까 선생님이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그보다 훨씬 적을 걸로 짐작됩니다. 선생님이 속아서 동거하게 된 보상으로는 충분치 않을 거예요.

돈이 안되면 형사처벌이라도 받게 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이혼남이라고 속이면서 결혼하자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안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이 됐는데 이 죄는 오래 전에 폐지됐거든요.

하지만, 현관문에 자물통을 채워서 선생님이 밖에 못 나가게 한 부분은 형사상 감금죄에 해당한 중대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증거(현관문에 자물통을 채운 사진과 이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녹취 등)를 확보해서 사실혼 남편을 감금혐의로 형사고소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감금혐의로 형사고소하는 것이 남편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이고, 그 형사사건에서 합의금을 받는 방법이 가장 나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남편의 상태가 상당히 심각해보인다는 거예요. 의처증 뿐 아니라 망상장애 증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사건을 하다보면 배우자가 제3자와 짜고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선생님 남편도 그런 증세를 보이는 것 같네요. 그럴 경우에는 배우자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고 변명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요. 병 때문에 그런 거니까요. 정신과에 가서 치료받고 약을 복용하면 어느 정도 진정되긴 하는데, 자기는 정상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절대 병원에 안 갈 거예요. 이런 상태의 남편과 같은 집에 계속 사는 건 너무 위험하니 하루빨리 집을 나오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형사고소와 위자료 청구는 집을 나온 후에 진행해도 되니까요. 피해보상도 중요하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조혜정 변호사
[20년간 가사소송 등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지난 20년간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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