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내가 산 밥통, 부부싸움하다 부숴도 재물손괴 아냐"

부부싸움 중 결혼 전부터 자기가 쓰던 밥통 던져…헌재 "재물손괴 객체 안 돼"

김종훈 기자 2020.04.09 12:00

/사진=뉴스1



결혼 전부터 쓰다 신혼집에 들여놓은 밥통을 부부싸움 도중 던져 부쉈다 해도 재물손괴죄가 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헌재는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를 받은 A씨에 대해 내려진 기소유예 처분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취소한다고 9일 밝혔다. 기소유예는 죄는 맞지만 형사재판까지 갈 정도는 아니라고 검사가 판단했을 때 재판 없이 사건을 끝내는 처분을 말한다. 검사가 범죄 성립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기소유예는 무혐의 처분과 다르다.

A씨는 사실혼 배우자 B씨와 함께 살게 된 지 10개월 만에 이혼 이야기를 꺼내며 크게 다퉜다. B씨가 이혼 요구에 응하지 않자 A씨는 집에 있던 이불, 카페트, 수건, 슬리퍼를 가위로 자르고 밥통을 내던져 부쉈다. A씨가 결혼 전부터 구입하거나 선물받아 쓰던 물건들이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재물손괴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검찰의 기소유예도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라 헌법소원으로 불복할 수 있다.

헌재는 A씨에 대해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해야 성립하는데, A씨가 부순 물건들은 결혼 전부터 자기 소유였던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 물건들이 가족공동생활에 필요한 가재도구여서 B씨도 사용·수익하기는 했으나 사실혼 관계가 유지된 기간은 10개월 정도로 짧았고 A씨와 B씨 사이 물건들의 소유권 귀속에 관한 특별한 논의는 없었다"며 "따라서 이 물건들은 재물손괴죄의 객체인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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