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진흥원 채용비리, 알고보니 '민우회' 선후배

유동주 기자 2020.07.01 05:20
[서울=뉴시스]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가운데)이 7일 서울 중구 바비엥Ⅱ에서 열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특수법인 출범식'에 참석해 '여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관 옆인 앞 줄 오른편에서 네번째가 박봉정숙 여성인권진흥원장. (사진=여성가족부 제공) 2020.01.07. photo@newsis.com




여성가족부 감사에 '채용비리'가 적발돼 직무정지 상태인 박봉정숙 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이 자신이 상임대표로 있었던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 후배 활동가들의 채용에 직접 관여했던 것으로 머니투데이 취재결과 확인됐다. 박봉 원장은 사무처장, 공동대표, 상임대표 등 주요 직위를 거쳤던 민우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30일 경찰,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진흥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박봉정숙 전 민우회 상임대표는 올 1월 진흥원 채용에서 민우회 후배 3명을 합격시키는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박봉 원장과 후배 3명은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민우회에서 상근자와 주요 활동가로 수년에서 십수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4명 중 일부는 상근 활동가로 일한 시기가 겹친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실시된 감사에서 이러한 채용비리 혐의를 확인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박봉 원장은 여가부 결정에 따라 이사회 의결로 현재 직무정지된 상태다. 경찰은 민우회 전임 대표였던 박봉 원장이 민우회 후배 활동가들을 채용시킨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은 같이 민우회 활동을 했던 후배들이 지원한 채용과정에서 진흥원 채용규칙에 따라 스스로 '회피'해야함에도 면접 등의 과정에 직접 참여한 혐의다. 다만 추가 불법행위가 수사로 밝혀질 경우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형사처벌 될 가능성도 있다.

올 1월 채용에서 박봉 원장의 관여로 부정 선발된 혐의를 받는 3명은 현재 진흥원에서 각각 본부장과 팀장급을 맡고 있다. 그중 특히 여성계에서 오랜기간 활동해온 본부장 A씨는 진흥원장 바로 다음 직급을 맡고 있다. A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핸드폰 번호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원장과의 통화나 문자내역 등 채용비리 관련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용비리 연루 혐의자인 A씨가 진흥원 인사채용 관련 업무를 계속 총괄 담당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문제가 된 올 1월 채용 관계서류 등을 직접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해 박봉 원장 취임 직후엔 '기간제'로 진흥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국회 업무 등 대외업무를 담당 본부장인 A씨가 총괄하도록 돼 있는 점도 부적절하다. 채용비리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업무에서 배제되지 않고 계속 국회 대응 등을 담당하고 있다. 채용비리 관련 제보를 받은 복수의 야당 의원실에서 진흥원에 채용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데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국회 제출 자료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어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하리라 보기 어렵다.

한 국회 관계자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가 자료요구를 하고 있는데 부정채용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국회 자료제출을 총괄하는 본부장 직위에 계속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상급기관인 여가부가 당연히 해당 혐의자들도 원장과 함께 업무에서 배제시킨 뒤 수사결과에 따라 인사 처리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진흥원 관계자는 민우회 관련 경력과 벅봉 원장과의 관계 등을 묻는 머니투데이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릴 게 없다"고 답했다. 여가부 관련 담당자도 채용비리 연루 직원들이 업무에서 배제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수사의뢰 중이라 별도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박봉정숙 원장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소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 서울시 인권위 위원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여성계 인사다. 2009년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된 진흥원은 직전 원장도 내부 직원간의 성희롱 사건 이슈를 제대로 처리하지못해 이사회 의결로 해임되기도 했다.

채용비리 관련 혐의자들이 오랜 기간 활동했던 사단법인 민우회는 1987년 창립돼 '성평등'과 '여성인권'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여성단체 중 가장 큰 전국단위 기구다. 민우회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과 함께 대표적인 여성계 주요 단체다. 다수의 여성 정치인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민우회 출신으로 가장 고위직에 오른 건 한명숙 전 총리다. 한 전 총리는 민우회 설립 초기인 1990년부터 5년간 민우회 회장을 역임했다. 4선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김상희 전 민주당 의원도 민우회 부회장(1987년)과 상임대표(2005년)를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 인사 중 유송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 등도 민우회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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