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강림 트레이싱' 논란, 퍼블리시티권 침해일까

허락없이 '노브레인 서바이벌' 정준하씨 바보 역할 캐릭터화 한 회사, 500만원 배상 판결

김종훈 기자 2020.07.31 14:53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웹툰 '여신강림'으로 유명한 작가 '야옹이'(필명)가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웹툰 등장인물 몇몇이 현실 속 연예인을 쏙 빼닮은 탓이다. 루리웹, 더쿠 등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연예인들의 사진을 '트레이싱'(따라 그리기)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목소리, 이름, 얼굴 등 유명인 고유의 것을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는 법 규정은 아직 없지만 방송인 정준하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을 통해 보호 가치가 있는 재산권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정씨 사건을 보면 연예인의 모습을 캐릭터화하는 것도 퍼블리시티권에 저촉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씨는 2003년 MBC에서 방영된 개그코너 '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두 번 죽이는 거에요"라며 서러워하는 바보 캐릭터를 연기해 인기를 얻었다. 캐릭터 디자인 업체 A사는 지금의 '카카오톡 이모티콘'처럼 쓸 수 있도록 정씨가 바보로 분장한 모습을 캐릭터로 만들어 이동통신사에 콘텐츠로 제공했다. 정씨와 전혀 협의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정씨는 A사가 자신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며 68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의 경우 승낙 없이 자신의 성명이나 초상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정당한 사용계약을 체결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의 박탈이라고 하는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된다"며 퍼블리시티권도 보호가치가 있는 재산권이라고 명시했다.

이어 "A사가 정씨 승낙 없이 정씨의 얼굴을 형상화해 일반인들이 정씨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를 제작한 후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콘텐츠로 제공한 것은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본 것처럼 정씨 사건 재판부는 '본인 허락 없이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를 제작한 것'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만약 야옹이 작가가 트레이싱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이 판단이 그대로 여신강림 논란에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미 많은 누리꾼들이 여신강림 등장인물과 특정 연예인들을 연결짓고 있어 '일반인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를 제작했다'는 점 입증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정씨는 손해배상으로 6800만원을 청구했다. 자기 얼굴을 베낀 캐릭터로 발생한 매출 1800만원은 자기 몫이고, 나머지 5000만원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로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로 인정된 금액은 500만원이었다.

재판부가 조사해보니 정씨 캐릭터로 발생한 매출은 약 240만원이었다. 이를 이유로 재판부는 캐릭터 매출 1800만원을 자기 몫으로 달라는 정씨 주장을 기각했다. 대신 정씨가 다른 캐릭터 상품 계약에서 선급금으로 500만원을 받았던 사실 등을 근거로 배상액수를 500만원으로 정했다. 퍼블리시티권이 유일무이한 유명인의 얼굴, 목소리 등에서 나오는 권리라 하더라도 '부르는 게 값'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여신강림과 관련해 언급되는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톱스타'들이다. 만약 논란이 실제 사건으로 비화된다면 연예인들이 광고, 캐릭터 등 계약에서 얼마를 받았는지에 따라 액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당사자들이 문제삼지 않는다면 정씨 사건처럼 법정다툼으로 비화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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